“특권 줄게 뇌물 다오”… ‘인허가료 부패' 中 경제 촉진제

김수미 2023. 4. 29. 01: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위 관료들과 기업가 ‘짬짜미'
대규모 사업 추진 특혜성 계약
부정부패 만연에도 성장 역설적
장기적 부의 쏠림·불평등 악화
美, 로비스트 합법화… 불법 감시
習 ‘부패와의 전쟁' 주변부만 색출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위엔위엔 앙/양영빈 옮김/한겨레출판/2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최고 지도자에 오르면서 “부패가 당과 국가를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중국 공산당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패와의 전쟁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12∼2017년에만 150만명의 관료가 부패 혐의로 처벌받았는데 최고 사형까지 받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만연한 부패로 중국의 경제와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역사상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을 이뤘고, 그 사이 부패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최근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 원인 중 하나로 시 주석의 과도한 반부패 운동이 지목되고 있다.
중국 최대 부패 스캔들의 주인공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가운데). 그는 47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직권을 이용해 아내의 살인행각을 무마하려 한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출판사 제공
중국의 정치 경제 연구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위엔위엔 앙 존스홉킨스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신간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에서 이 부패와 성장의 역설을 파헤치고 부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15개국 전문가 집단 대상 설문조사와 중국 공무원 및 기업인 400명 이상의 인터뷰 등을 통해 중국 부패의 역사와 진화를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

저자는 먼저 ‘부패는 정말 나쁜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모든 부패는 나쁘지만, 모두 동일하게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자답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부패를 시민을 대상으로 횡령·갈취하는 ‘바늘도둑’, 공공 재원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소도둑’, 영업허가 등을 위해 뇌물을 받는 ‘급행료’, 고위관료가 대규모 건설 사업이나 재건축 프로젝트 계약 이권을 챙겨주고 뇌물을 받는 ‘인허가료’의 4개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바늘도둑과 소도둑은 공공 재산과 사유재산을 소진하며 법과 질서를 뒤집을 뿐 아니라 투자자 관광객 해외원조자를 단념하게 만들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장 유해하다. 급행료는 행정적 장애나 지연을 초래해 시민과 업계에 비용을 유발하는 세금의 성격을 띤다. 반면 인허가료는 불법과 합법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자본주의 스테로이드’, 즉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성장촉진제다. 그러나 기업가 입장에서는 당의 고위 간부와 인맥을 쌓기 위해 주는 뇌물, 즉 인허가료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투자에 가깝다.
위엔위엔 앙/양영빈 옮김/한겨레출판/2만원
모든 나라는 이 네 가지 유형의 부패를 갖고 있는데 방글라데시와 가나에서는 급행료가, 나이지리아에서는 소도둑이, 태국에서는 바늘도둑이 지배적이다. 부패가 만연한 저소득 국가들과 달리 중국이 빠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인허가료가 지배적인 부패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도 인허가료 부패가 많다.

중국에서 인허가료는 이익 공유 모델을 통해 강력한 성장촉진제 역할을 했다. 턱없이 적은 관료들의 급여를 보충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세수와 일선 공무원의 비과세 징수 수입을 인센티브에 연계시킨 것이다. 관료들은 지대를 갈취해 얻는 수익보다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일으켰을 때 얻는 과실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이 있는 투자자들에게 특혜성 계약과 값싼 토지 이용료를 제공하고 규제 면제 등 특혜를 제공했다. 부패가 폭력과 도둑질에서 권력과 이익의 교환으로 진화한 것이다.

인허가료 부패는 단기적인 성장을 가져오지만 부의 쏠림과 불평등을 악화시켰다. 미국도 도금시대라 불리는 1880∼1930년에 남북 전쟁 이후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불평등이 심화했다.

두 나라의 인허가료 부패의 차이점은 합법화와 부패 척결의 주최다.

미국은 정치 캠페인의 자금 내역을 공개하고, 로비스트를 합법화해 인허가료를 제도화했다. 또 불법적인 형태의 부패를 언론의 탐사 보도, 선거에 의한 경쟁, 비밀 투표 등 민주적 수단을 통해 감시하고 견제했다.

반면 중국은 위에서 아래로의 규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부패한 정치인과 자본가를 색출했다. 시진핑은 수많은 부패 관료를 퇴출시켰지만, 인허가료의 핵심 원인 주변부를 맴돌기만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허가료의 핵심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권력이다. 국가가 경제 권력의 중심이 돼 관료가 귀중한 자원을 통제하는 한 그들의 특혜에 대한 수요는 계속 생기므로 부패를 박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 언론과 시민사회를 통제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부패를 감시하는 사회적 역할을 억제해 시민의 자정 능력을 저하시켰다.

책은 중국의 사례를 통해 자본주의가 부패의 박멸이 아니라 부패의 진화와 함께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부패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발전과 함께 달라지는 부패의 양상을 알아야 중국의 성장을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