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중 사이서 균형 잡고 CPTPP 가입 적극 나서야”
무역정책 권위자 제프리 샷
Q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어떻게 보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서 선회하지 않은 듯한데.
A : “중국과의 무역전쟁 지속 등 트럼프 행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면이 강하다. 다만 트럼프 때에 비해 교역 파트너를 기꺼이 늘리려 하거나, 국제기구와의 협력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점에선 진전이 있다. 전통적인 무역협정에서 벗어나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특징도 있다.”
Q : 비공식 채널이란.
A : “자유무역협정(FTA)처럼 포괄성과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 아닌 ‘협의체’에 가까운 경우를 가리킨다. 바이든 행정부는 양자회담에서 커버할 수 없는 범위인 노사·환경 문제나 디지털 경제 등과 관련해선 협의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협의체는 미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치 않아 정책 추진이 쉬워진다.”
A : “결국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규제 등 중국에 대한 강경한 정책 유지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합의가 작용 중이다. 여기에 민주당은 과거 무역협상들이 근로자 권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했다고 보고 보호무역주의 쪽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Q : 중국을 배척한 미국의 행보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면서 세계 경제를 경착륙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 : “미국이 유럽·일본 등과 긴밀하게 대중(對中)정책을 조율 중인 건 맞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가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유럽은 글로벌 어젠다인 기후 분야 등에 있어선 중국과 협력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면서 북한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마냥 미국 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상황이다.”
Q : 한국은 지난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하는 등 미국과 관계 강화에 힘쓰고 있지만, 중국과는 관계가 나빠져서 딜레마다.
A : “한국은 전략적으로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한국이 중국 주도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동참한 상황에서 IPEF에 가입한 건 그런 면에서 보완적인 역할을 할 거다. 한국은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세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Q : 미국의 IRA도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엔 위협적인데.
A : “오히려 한국엔 기회를 더 제공하는 법안이다.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더 많이 투자할 경우 많은 득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물론 기습 입법으로 급조된 면이 있는 법안이라 허점이 있다. 특정 분야에서 특정 국가와 기업이 중국으로부터 부품·소재를 조달하는 경우 차별대우를 받는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라 이런 조항을 회피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한국이) 원자재를 조달하는 나라가 IRA로 차별대우를 받으면 간접적인 피해는 입을 수 있어서 이 문제를 한·미 정부가 해소하려는 논의는 이어갈 필요가 있다.”
Q : 미국이 탈퇴한 뒤 일본 주도로 탈바꿈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구 TPP)은 최근 영국 가입을 승인했다. 미국이 재가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A : “미국 내부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의 재가입 가능성은 아직 희박하다. 미국의 탈퇴는 사실 큰 실수였다. 다시 한국 얘기를 해보자면, 한국도 CPTPP 가입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수년간 한국 정부가 CPTPP에 가입하려 노력은 했지만 계속 유예된 바 있다. 농수산물 분야 개방으로 농·어민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여론 때문인데, 이런 우려는 과장된 면이 있다. 국익 전반을 위해 유연하게 봐야 한다. 영국도 농·어민의 반발이 컸지만 CPTPP 가입을 위한 과정에서 국익 전반에 초점을 맞췄다.”
Q : 최근 각국이 중국 위안화의 결제를 확대하는 등, 탈(脫) 달러에 힘쓰면서 미국의 기축통화 패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A : “위안화 결제가 과거보다 확대되고는 있다. 하지만 대규모는 아니며 중국과 러시아 간 거래, 이외에 중동 지역에서의 일부 결제 등으로 범위가 한정된 만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아직 미국처럼 강력하면서도 폭넓고 깊이 있게 운영되고 있는 자본시장이 없는 만큼 달러를 대체할 통화가 없다.”
Q : 우크라이나 사태는 얼마나 더 이어질까.
A : “한쪽이 결정적 전투에서 대승한다든가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길어질 것 같다. 러시아는 전쟁 중단이 곧 실패 인정이라 그럴 가능성이 작다. 우크라이나도 피해가 컸기에 타협하고 끝내기가 쉽지 않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