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위의 악마’ 민병대·정부군 수장, 동지서 적 돼 ‘핏빛 투쟁’
끝없는 내전, 수단에 무슨 일이
이번 내전은 수단 최고 기관인 과도주권위원회 1인자인 압델 파타 알부르한 의장과 2인자인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 부의장의 권력 투쟁에서 시작됐다. 알부르한은 정규군을, 다갈로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민병대인 신속지원군(RSF)을 각각 이끌고 있다.
‘하메디’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다갈로와 RSF의 이력은 이번 내전의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RSF는 20년 전 독재자 알바시르가 수단 서남부 다르푸르의 비아랍계 반란(2003~2020년) 진압을 위해 창설한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말 위의 악마)’가 기원이다. 알바시르는 2013년 잔자위드를 개편해 지휘관들에게 군인 계급을 부여하고 진압 작전을 맡겼으며 예멘과 리비아 내전에도 파병했다. 잔자위드는 다르푸르 내전 당시 학살·강간·고문 등 잔학 행위로도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다갈로와 알부르한의 ‘오월동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9년 알바시르 축출 직후 민간인들이 RSF를 정규군에 통합해 관리할 것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은 군 자금줄인 농업·교역·광업 분야 기업을 정부에 넘기라고 요구하며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문제는 무력을 바탕으로 이권에 개입해온 다갈로가 국내에선 물론 해외에서도 지원 세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CNN 방송은 “RSF가 내전 발생 직후 바그너 그룹과 리비아 동부의 군벌로부터 미사일과 탄약 등의 무기를 지원받았다”고 보도했다.
다갈로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정도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바그너 그룹은 그 대가로 금광 채굴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은 더 나아가 러시아가 이를 빌미로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홍해의 수단 항구를 군항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수단 내전이 단순한 내부 갈등을 넘어 강대국들의 첨예한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 미국·영국 등 서방국가들도 수단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일환으로 홍해 연안에 위치한 포트수단 항만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수단 내륙 유전에서 포트수단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지분의 40%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UAE도 두바이의 글로벌 항만 운영 업체인 DP월드를 앞세워 60억 달러를 투자해 포트수단에 대규모 항만을 새로 건설하고 자유무역지대로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 UAE가 한국 교민 철수 작전에서 보안 정보를 제공하고 경호대를 붙여줄 수 있었던 배경이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수단과 마주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다양한 투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사우디와 UAE의 적극적인 투자에는 경제적 이익 추구와 함께 세속주의 군부 쿠데타로 힘을 잃은 수단 이슬람주의의 부활이란 목적도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아랍계 무슬림이 지배하는 수단 중앙정부는 1964년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데 이어 83년부터는 샤리아(이슬람 율법)도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4년엔 무슬림 부친과 기독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기독교도로 자란 임산부가 이슬람 개종을 거부하자 샤리아를 바탕으로 배교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을 정도였다. 이 같은 이슬람주의는 기독교도와 전통 종교 신봉자가 많은 비아랍계 주민의 불만을 사면서 내전의 불씨로 작용해 왔다
현재 미국과 영국은 유엔·아프리카연합(AU) 등과 함께 정부군과 RSF의 중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일시 휴전조차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서방은 수단 군부가 홍해에 러시아 군사기지와 중국 항만이 들어서도록 허용해 아프리카에 대한 중·러의 영향력이 한층 커지는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향후 대응책 마련이 부심하고 있다. 일각에선 수단 내부의 권력 다툼에 열강들의 주도권 다툼이 겹치면서 수단 민주정부 수립이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수단이란 난제를 하나 더 떠안게 된 셈이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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