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김치에 빠진 미식가의 ‘촉’ K푸드 스토리, 코스요리에 담았죠

서정민 2023. 4. 2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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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한식 레스토랑 연 프랑스인
태국 내 유일한 파인 다이닝 한식당 ‘죽순채의’ 오너 프레데릭 마이어. 최기웅 기자
지난해 태국 방콕에 문을 연 ‘죽순채(Juksunchae)’는 태국 내 유일한 파인다이닝 한식당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죽순채의 오너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다. 태국을 중심으로 말레이시아·베트남에서 외식사업을 벌이고 있는 프레데릭 마이어가 그 주인공이다. 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식재료 유통 사업을 하는 동시에 태국음식 전문 식당 ‘이사야 샴 클럽’ ‘반 파타이’, 디저트 숍 ‘ICI’,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사와완’ 등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3~4개월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할 정도로 한식에 푹 빠져서 한국 식재료와 한국 술을 태국으로 수입할 계획을 짜고 있다.

전 세계 여행하며 산해진미 경험

한국의 사찰음식에서 영감을 얻은 ‘버섯 모둠 요리’. [사진 죽순채]
그의 촉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다. 미식가 부모 밑에서 자란 프레데릭 역시 타고난 미식가다. 프랑스에 있는 자신 소유의 와이너리 주변 맛집 주인이 식당을 내놓자 그 스태프들을 포함해 식당을 사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맛을 잃을 순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타고난 사업가이자 전략가다. 그의 첫 직장은 태국의 유명 레스토랑 그룹 ‘블루 엘리펀트’였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블루 엘리펀트에서 R&D 파트를 맡고 있던 그에게 CEO가 방콕에 있는 레스토랑 컨설팅을 부탁했고, 이곳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던 태국인 아내를 만났다. 프레데릭의 이력 중 또 한 가지 재밌는 것은 5년 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온갖 산해진미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결혼 후 아내와 나는 외식업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지쳤으니까요. 그래서 DJ 에이전시를 시작했죠. 해외 유명 DJ 10명을 영입하고 그들과 함께 월드 투어를 다녔는데, 내가 하는 일은 전 세계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면서 샴페인을 마시는 일이었죠.(웃음)”

한국에 처음 온 것도 서울에 오픈한 W호텔에서 디제잉 파티를 열면서다.

“2006년 처음 한국에 와서 맛본 BBQ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갈비·불고기·삼겹살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맛이었죠. 배를 갈아서 소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동시에 ‘단짠’의 묘미까지 만들어 낸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계란찜과 성게·버섯·캐비어·김치·우엉·밥 등을 비벼먹는 ‘성게 비빔밥’. [사진 죽순채]
5년 간의 음악여행을 마친 프레데릭 부부는 태국에 정착한 후, 오랜 친구이자 유명 셰프인 이안 키티차이와 함께 2011년 이사야 샴 클럽을 오픈했고 이후 외식 사업을 확장해왔다. 마침 한국에선 한식 파인다이닝 식당들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밍글스’를 운영하는 강민구 셰프 덕분에 한식에 대해 새로운 발견들을 할 수 있었죠. 사실 처음에는 김치를 안 좋아했는데 ‘김장’ ‘발효’ 과정을 알고 매료됐죠.”

파인다이닝 한식당 죽순채는 미식가이자 외식 사업가인 그의 촉이 집약된 공간이다. 블랙&화이트로 꾸며진 모던한 실내에는 커다란 바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일단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곳곳에 자리 잡은 한국 전통 목가구·도자기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메뉴는 11가지 코스요리 한 가지뿐(1인당 약 20만원).

K컬처 인기 대단, 최고의 마케팅

딸기 속에 된장과 치즈크림을 넣고 설탕으로 싸서 구운 한입 음식 ‘딸기된장’. [사진 죽순채]
“파인다이닝에선 ‘경험’이 중요해요. 가벼운 단품 요리 몇 가지만으로는 ‘한국의 맛’이 가진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느끼기에 부족하죠. 예를 들어 단품요리를 주문하면 내가 아는 맛을 확인하는 것밖에 안 되지만, 코스 요리에선 낯선 식재료와 조리법을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 ‘낯선 놀라움’이 미식의 핵심이죠.”

11가지 코스에는 문어두부부각, 어만두(도미를 김치·미역·베이컨에 감싼 요리), 랍스터 죽, 불고기 등이 나온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가장 흥미로워 하는 메뉴는 ‘된장딸기’다. 딸기 속을 파서 된장과 치즈크림을 넣고 겉을 설탕으로 감싸 불에 그을린 요리인데 말 그대로 ‘단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계란찜과 성게·버섯·캐비어·김치·우엉·밥 등을 비벼먹는 ‘성게 비빔밥’, 된장으로 속을 채운 디저트 ‘호떡’도 독특하다. 모두 프레데릭과 캐나다 출신의 한국인 셰프 헨리가 고안한 음식들이다. 전통한식 차림새와는 차이가 있지만 한식의 유래와 식재료, 조리법을 제대로 알고(헨리 셰프는 수시로 자신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한다) 외국인의 눈과 입맛을 고려해 만든 한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음식은 국제 언어에요. 나름대로 익힌 외국어를 이용해 자신만의 스토리로 풀어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죠. 전 세계에서 프렌치 푸드를 가장 잘 하는 나라는 일본이에요. 그만큼 일본인들이 프렌치 푸드를 연구한 거죠. 다른 언어를 쓰는 셰프들과의 창의적 협업은 한식 글로벌화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죠.”

한식 글로벌화를 위한 프레데릭의 두 번째 조언은 ‘자연스러운 문화 확산’이다. 현재 넷플릭스 태국의 인기 톱10 콘텐트 중 5~6개가 한국 콘텐트다.

“지난 몇 년 간 태국 내 K컬처 인기는 정말 대단해요. 태국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서 먹는 음식에 정말 관심이 많고 꼭 맛보고 싶어 하죠. 이건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얼마 전 프랑스에 있는 어머니가 ‘친구가 만들어준 김치를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직접 만들어봤다’고 하더군요. 음악·드라마·영화·음식·패션이 한 번에 전달될 수 있는 문화 콘텐트야말로 수백 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마케팅이죠.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연구할 때라고 생각해요.”

프레데릭이 조언하는 세 번째 방법은 ‘고급화’다.

“태국의 보통 마켓에서 볼 수 있는 ‘초록병’ 희석식 소주보다 고급스러운 한국 술, 획일화된 공산품이 아니라 장인이 정성들여 키운 유기농 채소와 소스들이 더 적극적으로 소개된다면 한식은 세계인들에게 한층 사랑받을 수 있을 겁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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