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김치에 빠진 미식가의 ‘촉’ K푸드 스토리, 코스요리에 담았죠
태국에 한식 레스토랑 연 프랑스인
전 세계 여행하며 산해진미 경험
“결혼 후 아내와 나는 외식업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지쳤으니까요. 그래서 DJ 에이전시를 시작했죠. 해외 유명 DJ 10명을 영입하고 그들과 함께 월드 투어를 다녔는데, 내가 하는 일은 전 세계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면서 샴페인을 마시는 일이었죠.(웃음)”
한국에 처음 온 것도 서울에 오픈한 W호텔에서 디제잉 파티를 열면서다.
“2006년 처음 한국에 와서 맛본 BBQ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갈비·불고기·삼겹살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맛이었죠. 배를 갈아서 소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동시에 ‘단짠’의 묘미까지 만들어 낸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밍글스’를 운영하는 강민구 셰프 덕분에 한식에 대해 새로운 발견들을 할 수 있었죠. 사실 처음에는 김치를 안 좋아했는데 ‘김장’ ‘발효’ 과정을 알고 매료됐죠.”
파인다이닝 한식당 죽순채는 미식가이자 외식 사업가인 그의 촉이 집약된 공간이다. 블랙&화이트로 꾸며진 모던한 실내에는 커다란 바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일단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곳곳에 자리 잡은 한국 전통 목가구·도자기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메뉴는 11가지 코스요리 한 가지뿐(1인당 약 20만원).
K컬처 인기 대단, 최고의 마케팅
11가지 코스에는 문어두부부각, 어만두(도미를 김치·미역·베이컨에 감싼 요리), 랍스터 죽, 불고기 등이 나온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가장 흥미로워 하는 메뉴는 ‘된장딸기’다. 딸기 속을 파서 된장과 치즈크림을 넣고 겉을 설탕으로 감싸 불에 그을린 요리인데 말 그대로 ‘단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계란찜과 성게·버섯·캐비어·김치·우엉·밥 등을 비벼먹는 ‘성게 비빔밥’, 된장으로 속을 채운 디저트 ‘호떡’도 독특하다. 모두 프레데릭과 캐나다 출신의 한국인 셰프 헨리가 고안한 음식들이다. 전통한식 차림새와는 차이가 있지만 한식의 유래와 식재료, 조리법을 제대로 알고(헨리 셰프는 수시로 자신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한다) 외국인의 눈과 입맛을 고려해 만든 한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음식은 국제 언어에요. 나름대로 익힌 외국어를 이용해 자신만의 스토리로 풀어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죠. 전 세계에서 프렌치 푸드를 가장 잘 하는 나라는 일본이에요. 그만큼 일본인들이 프렌치 푸드를 연구한 거죠. 다른 언어를 쓰는 셰프들과의 창의적 협업은 한식 글로벌화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죠.”
한식 글로벌화를 위한 프레데릭의 두 번째 조언은 ‘자연스러운 문화 확산’이다. 현재 넷플릭스 태국의 인기 톱10 콘텐트 중 5~6개가 한국 콘텐트다.
“지난 몇 년 간 태국 내 K컬처 인기는 정말 대단해요. 태국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서 먹는 음식에 정말 관심이 많고 꼭 맛보고 싶어 하죠. 이건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얼마 전 프랑스에 있는 어머니가 ‘친구가 만들어준 김치를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직접 만들어봤다’고 하더군요. 음악·드라마·영화·음식·패션이 한 번에 전달될 수 있는 문화 콘텐트야말로 수백 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마케팅이죠.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연구할 때라고 생각해요.”
프레데릭이 조언하는 세 번째 방법은 ‘고급화’다.
“태국의 보통 마켓에서 볼 수 있는 ‘초록병’ 희석식 소주보다 고급스러운 한국 술, 획일화된 공산품이 아니라 장인이 정성들여 키운 유기농 채소와 소스들이 더 적극적으로 소개된다면 한식은 세계인들에게 한층 사랑받을 수 있을 겁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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