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서비스 기반 네번째 세계화 개막
마크 레빈슨 지음
최준영 옮김
페이지2북스
과거 한국 사회에선 외채망국론이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산더미 같은 외채 부담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결과는 아는 대로다. 1980년대 한국 경제는 망하기는커녕 ‘3저 호황’을 타고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미국의 경제 전문 언론인인 저자는 한국이 매우 예외적인 성공 사례였다고 본다. 그는 “대규모 외채를 부담하던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이 부채 상환에 필요한 달러를 축적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수출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수출 주도형 경제 전략에 주목한다. 비슷한 시기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한 나라들은 대부분 경쟁력 저하와 비효율로 위기를 면치 못했다. 저자가 말하는 2차 세계화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저자는 지난 200년간 자본주의 역사를 세계화라는 개념으로 풀어간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운송함으로써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자본가의 본성이 바탕에 깔렸다. 1차 세계화는 산업혁명 초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다. 이때는 세계화의 혜택을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가져갔다. 2차 세계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시기다. 저자가 화물 운송의 혁명이라고 평가하는 컨테이너선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세계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번영의 혜택은 주로 선진국 몫이었다.
냉전 이후 3차 세계화를 맞아 선진국과 후진국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저자는 “3차 세계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도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고비로 이런 식의 세계화도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면 세계화는 이제 끝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저자의 대답이다. 한국판 제목에 쓴 ‘세계화의 종말’은 3차 세계화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대신 저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중심의 4차 세계화 시대를 말한다. 영어 원제는 ‘Outside the Box’. 컨테이너 박스를 앞세운 제조업 기반 세계화를 벗어날 때라는 의미로 읽힌다.
주정완 논설위원 jwjo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