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써야 미래가 있다고 여겼지만
줄리 세디비 지음
김혜림 옮김
지와사랑
이중언어 사용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두 언어를 쓰면 자아도 두 개로 나뉘는 걸까. 두 언어가 가른 자아 간의 역학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언어 심리학자인 저자는 모국어와 제2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언어에 천착해 언어와 정체성을 둘러싼 답을 찾아간다. 이는 모국어를 잃어버릴 확률이 가장 높다는 1.5세대 이민자로서 그가 자아를 상실하고 회복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오스트리아·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 몬트리올에 정착했다. 독일어를 쓰는 유아원을 다니고,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몬트리올의 불어권 거리를 걷고, 영어권 학교에 다녔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대가로 모국어는 점차 잊었다. 이민자로서 자신의 뿌리를 유지하는 것보다 미래로 돌진하는 게 중요했고, 미래는 영어를 써야만 갈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개인적 경험은 그동안 스러져간 수많은 ‘연약한 연어’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소수의 언어가 세계의 수많은 언어를 지배하면서 모국어가 위태롭게 된 이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각 언어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는 “다성(多聲)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곳곳에 제시하는 관련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어린 나이에 다른 언어권으로 이동할수록 모국어가 제2언어에 압도되는 정도가 컸다. 캐나다 원주민 부족을 조사한 결과, 토착 언어로 대화하는 구성원 수가 전체 구성원의 절반이 되지 않는 부족에서는 절반 이상인 부족에 비해 젊은이의 자살률이 여섯 배나 높았다. 언어와 정체성, 심리, 문화 다양성 등을 키워드로 한 여러 연구는 모국어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한다. 원제 Memory Speaks.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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