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강

2023. 4. 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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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눈도
마주치지 말자.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처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차용.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마음은 자주 말에게 집니다. 날 선 말에 찔리기도 하고 뜨거운 말에 데기도 합니다. 거짓의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날도 많습니다. 사실과 거리가 멀고 진실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무렵 말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말은 빠르고 마음은 느리니까요. 또 마음은 자주 말에 걸려 넘어집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말이 매번 마음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넘어진 자리로 다가와 손을 내밀어주는 말도 있습니다. 어루만지고 살피고 잘 알려주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말들 역시 마음보다 빨라서 고마움을 전하기도 전에 저만치 멀어집니다. 그래도 고마운 말들을 따라가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의 마음이 한결 넓어지게 되니까요.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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