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문제 푼 대만처럼, AI 시스템으로 갈등 해결할까

2023. 4. 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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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빅데이터
대만은 한국의 ‘타다 사태’와 비슷한 갈등을 디지털 숙의 과정이라 불리는 ‘vTaiwan 프로젝트’와 ‘pol.is’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해결했다. 사진은 vTaiwan 홈페이지. [사진 vTaiwan 캡처]
어느 순간 우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조금의 양보도 없이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싸우는 사회가 됐다. 요즘 신문만 쑥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 양곡 수매, 외국인 가사 도우미, 원격 진로 등등의 이슈들이 모두 격론과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는 전문가 의견이랄 것도 따로 없다. 누가 전문가라고 얘기를 하면 일단 우리 편인가 저쪽 편인가부터 살펴본다. 심지어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의 판단에서도 판사 성향부터 따지는 것이 요즘의 실태다.

내 편-네 편 편 가르기 심한 사회

근래에 사실에 기반한 건전한 토론, 소수의견에 대한 경청, 숙의를 통한 합의라는 것을 과연 본 적이 있는가 싶다. 과연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편견이 없으며 약자를 배려하면서도 모든 사람을 위한 포용의 합의를 이루고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전문가나 리더가 있었는가 싶다.

SNS의 홍수로 편 가르기가 더욱 심해져 민주주의가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은 민주주의를 구해 낼 수 있을까. 최근 중앙일보 칼럼 중 ‘거짓말에 염치도 없는 정치인… 차라리 인공지능에 금배지 주자’라는 글을 보았다. 답답한 마음에 인공지능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체념 반 희망 반의 칼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허한 희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대용량 언어 모델에 기반한 챗GPT의 등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공지능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우리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적극적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pol.is 아이콘. [사진 vTaiwan 캡처]
최근 알파고를 개발했던 구글의 딥마인드팀은 조직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상이한 경우, 조직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취합해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해결책(solution)을 제시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현했다. 그들은 먼저 사람들끼리 가치관의 차이에 의한 의견이 다를 수 있는 152개 질문(예를 들어, 술에 대한 주류세는 올려야 하는가? 일반적 도로에서의 속도 제한의 한계를 올려야 하는가? 등)으로 시작해 각 질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구했다. 이 실험에는 영국에서 32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이들은 챗GPT를 훈련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모델로 사회적 가치 시스템이란 점수화를 통해 사람들이 점수를 주게 한 후 이것을 결과물로 해서 인공지능을 최종 완성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최종안과 인간전문가가 만든 최고 수준의 안(여기는 가장 세련된 논리와 근거가 같이 들어가 있다)을 사람들끼리 비교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의 안이 훨씬 더 많은 동의를 받아 낼 수 있었다. 즉 이 시스템은 사람들끼리 의견이 갈렸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안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인공지능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꼭 이러한 안이 자동으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

다음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 대해 극적인 합의를 이끌고 성공한 실지 예를 보자. 이것은 대만의 우버 사례이다. 대만도 과거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짧은 기간에 성공적인 민주화를 이끌었고, 현재 중국과 역사적, 지리적, 민족적 문제가 있기에 사회적 갈등이 우리보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만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2019년 대만에서는 우리의 ‘타다’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타다’ 사건 이후 모든 논의가 중단됐으며, 우버 등의 새로운 플랫폼 기반 서비스의 도입이 좌절됐고 사용자들의 불만이 지속됐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갈등과 의견 대립을 보였던 대만은 디지털 숙의 과정이라 불리는 ‘vTaiwan 프로젝트’와 ‘pol.is’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극적으로 우버와 택시 조합이 합의를 이루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인공지능 시스템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대만 정부의 적극적 노력에 더해 인공지능 시스템은 서로 의견이 다른 택시기사, 우버기사, 우버기업, 일반 사용자의 참여와 합의를 유도했다. 여기서 pol.is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서로 다른 의견이 어디서 얼마만큼 다른가를 시시각각으로 보여 주며 합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특히 pol.is시스템은 각각의 의견에 대하여 감성분석을 통해 현재 나의 의견이 어디에 속하는 것을 그래프로 보여 줌으로써 의견의 홍수 속에서 내 의견의 현 위치(상대적 강도, 나와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크기 등)를 알려주었다.

또한 대만 정부는 새로운 안의 제안에 있어 80%의 동의라는 룰을 정하여 상대방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은 처음부터 논의에서 제외하게 만들어, 그래프상의 나의 위치를 보면서 상대방의 어느 정도 사람들도 나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안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결국 우버기사와 일반 택시기사가 서로 양보하는 안이 나왔으며 대만 정부는 이것을 바탕으로 우버를 압박하여 많은 양보를 얻으며 성공적으로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었다. 현재의 우리의 국민신문고 시스템이 조선시대의 신문고를 모방해 정말 조선시대의 시스템처럼 이용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발전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챗GPT 활용해 판결한 미 판사

물론 현재의 인공지능 자체도 편견, 불투명한 정보 처리, 환상이라 불리는 틀린 문장의 조합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인공지능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는다. 또한 주어진 데이터에 대해서는 사실 그대로 해석을 하며 아무리 많은 정보와 의견이라도 반영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더 똑똑해져서 우리를 지배할까’보다는 이러한 좋은 기술을 인간이 남용하거나 잘못된 형태로 쓰게 되는 것이다. 즉 인간이 편향된 데이터를 넣어 주고 잘못된 목적 함수를 넣으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보편적 데이터를 입력시키고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목적함수를 적용하면 건전한 상식을 갖고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의 대용량 언어 인공지능 모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의 모든 공개된 정보를 활용한 것이기에 현재 상황에서의 우리의 상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데이터 분석과 정보처리 능력이 더해지면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지혜와 지식과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만 통치하는 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준거 논리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아주 꿈의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의 한 판사는 판결 결정을 하는 데 챗GPT를 활용했다고 고백해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미국의 한 기업은 교통범죄의 재판에서 피고가 인공지능 로봇을 이용해 변호를 진행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후 법원의 엄청난 반발에 결국 자신의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 1월에는 미 공화당 의원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입법을 발의,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입법이 만들어졌다. 재미있게도 그 인공지능이 입법발의한 내용은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법이었다.

모든 기술은 인간의 목적에 의해 그 쓰임이 결정될 수 있다. 아직은 실험이고 연구이지만 인공지능을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세상을 기대해 보자.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서울대에서 계산통계학과를 졸업 후, 카네기멜론대 사회심리학 석사, 남가주대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국가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에서 국무총리와 함께 민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AI 로 경영하라』 『오픈콜라보레이션』 『웹2.0과 비즈니스 전략』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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