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나는 왜 기타 레슨만 가면 바보가 되나(MD칼럼)
[도도서가 = 정선영 북에디터] 무릇 북에디터란 세간의 인식 때문에 어느 정도는 똑똑해 보여야 하는 직업이다. 사실 많은 사무직이 그렇듯 출판계에서도 학벌이라는 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아는 모 에디터는 저자와 첫 만남에서 어느 대학 나왔냐는 질문을 받고 답하자 '왜 (서울대 출신이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기본적으로 에디터가 각계 전문가와 작업하려면 어느 정도는 해당 분야의 소양이 필요하다. 세상 무지렁이 에디터에게 자신의 자식 같은 책을 맡기고 싶은 저자는 당연히 없겠다. 그래서 에디터는 책 한 권을 만들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고도서를 비롯해 여러 텍스트를 참조하고 공부해나간다. 그것이 수박 겉핥기식일지라도.
그동안 나는 나름의 노력을 한 덕분인지, 아니면 뛰어난 연기력 덕분인지 출판계에서 ‘바보’라는 말은 듣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왜…! 나는 유독 기타 레슨만 가면 바보가 될까.
“선생님, 학생을 먼저 포기하신 적은 없죠?” 한번은 불안한 마음에 기타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타를 배운 지 6개월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가장 쉬운 E코드 외에 다른 코드를 잡아보라고 하면 순간 반응 정지 상태가 된다. 그렇게 선생님이 말한 코드를 아예 잡지 못하고 멍하니 있기를 수십 번.
수업 광경은 늘 비슷하다. 내가 버벅거릴 때마다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게 이해가 안 돼요? 내가 어렵게 설명하는 건가. 검지를 축으로 이렇게 손가락을 한번에 옮겨가면 되는데…” “음… 손가락을 이렇게 따로따로, 힘을 균등하게 줘야 하는데…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거 같아요.”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왜 그럴까요?” 그러면 선생님은 이내 곤란하다는 듯 “아니 그걸 저한테 물어도…”
입장 바꿔 나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매 수업마다 내가 만들어내는 신박한 불협화음에 귀가 괴로운 것은 물론이요, 벌써 몇 달이 지나도록 코드 한번 시원하게 잡아내는 경우가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 기타 선생님은 인내심이 많은 분 같다. 아직까지 학생에게 먼저 못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다행히 나는 ‘최초’나 ‘최고’ 같은 수식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레슨 때 나는 말 그대로 세상 제일가는 바보다. 급기야는 연습실에 들어서며 넘어질 뻔하거나 의자에 앉으며 나자빠질 뻔한 것도 여러 번.(나는 평소에도 잘 넘어지는 편이다.) 이런 모습에 가족들이야 ‘쯧쯧 또 저러네’ 하고 넘기겠지만, 선생님은 속으로 ‘기타만 못 치는 줄 알았더니 총체적 바보인가’ 할 수도 있겠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세상 바보가 된 기분이 나쁘지만 않다.
그동안 나는 북에디터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똑똑해져야 했고, 똑똑해 보여야 했다. 새로운 지식을 쌓는 일은 재미있고(그래서 내 일을 좋아한다) 한편으로 버거울 때도 있었다. 비즈니스 미팅은 물론 우연한 모임에서도 똑똑할 것 같다는 세간의 인식 때문에 괜히 혼자 긴장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 신경 쓰는 경우도 많았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특히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들어온 에디터로서 무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이 늘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계속 바보로 남겠다는 말은 아니다.(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조금 더 잘하는 나를 기대하며 오늘 연습한다. 기타를 배우며 걸핏하면 코드를 까먹는 내 머리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탓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지만, 그렇다고 그런 내가 부끄럽지는 않다.
나는 지금 배우는 과정에 있고 환갑 버스킹까진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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