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SNS·민간위성…전쟁 판도 바꾼 오픈소스 정보

2023. 4.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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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전쟁사 변곡점 우크라 정보전 〈상〉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시스템을 장착한 차 옆에 우크라이나 군인이 서 있다. 이제 우크라이나 군의 필수품이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1991년 걸프전 당시 상업 뉴스채널인 CNN이 스포츠 중계하듯 전쟁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생중계했다. 세계가 놀랐다. 전쟁 그 자체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간방송이 전쟁을 생중계하는 풍경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30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과 진행을 내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전쟁의 새로운 양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표면상 여느 전쟁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정보의 눈으로 보면 사뭇 다르다. 전쟁사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개인의 스마트폰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발발 1년이 다 돼가던 작년 12월 3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마키이우카의 러시아군 임시훈련소에서 병사들이 연말을 맞아 스마트폰으로 가족들과 안부 전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통화가 끝나고 얼마 후 미사일 공격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막사가 파괴되고 러시아 병사 63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병사들의 통화 신호정보를 잡아 위치를 파악한 후 정밀 타격한 것이다. 비록 살상무기는 아니지만 개인의 휴대전화가 공격 위치정보를 알려준 정보자산이 된 것이다.

우크라, 적군 발견 땐 제보 채팅봇 개발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민에게 ‘E-에너미’ 채팅봇 사용을 홍보하는 사진. [사진 우크라이나 국방부]
뿐만 아니라 텔레그램, 트윗, 틱톡 등 SNS는 전쟁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핵심경로가 되고 있다. 2022년 10월 친(親)러 체첸 병사가 우크라이나 헤르손의 한 건물에서 재미삼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전우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틱톡에 올렸다가 몇 시간 후 해당 건물 전체가 정밀 폭격 당해 30명이 숨졌다. 우크라이나가 틱톡 영상을 보고 체첸군의 위치를 파악해 공격한 것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군은 SNS정보를 통해 적군 정보를 수집하여 실전에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SNS을 통해 러시아군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전파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이 국민을 결집시키고 우호적 국제여론까지 조성하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자, 아예 제도화에 나섰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디지털부는 국민이 적군을 발견하면 디아(Diia)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정부에 제보할 수 있도록 ‘E-에너미(E-Enemy)’ 채팅봇을 개발했다. 여기에 접속하면 발견한 러시아군의 규모와 장소, 시간 등 자세한 정보를 입력해 주도록 안내한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하루 수만 건에 이르렀고, 수도 키이우를 놓고 격전을 벌여 러시아군을 후퇴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겉보기엔 전쟁과 아무 상관 없어 보이지만, 스마트폰과 SNS는 우크라이나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이에 미국 후버연구소의 제가트 박사는 스마트폰과 SNS가 무기가 되고 있는 것을 보고 “무기가 무기같지 않아 보이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하나 중요한 변화는 민간 위성기업의 영향력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맥사테크놀로지와 같은 인공위성회사들은 지구관측 위성으로 촬영한 고해상도의 러시아군 영상정보를 언론에 계속 제공하며 전쟁 상황을 사실상 생중계하고 있다. 민간 우주기업의 지구관측 위성이 24시간 지구를 돌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피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은밀하게 감행하기란 매우 어렵다.

일론 머스크의 저궤도 위성인터넷인 스타링크(Starlink)는 더욱 빛났다. 저궤도위성을 이용하는 스타링크는 지상의 기지국이 파괴되어도 안정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원격에서 공유하므로 사이버공격에도 강하다. 따라서 러시아가 지상의 통신시설을 파괴해도 우크라이나는 스마트폰과 SNS 정보전을 계속 할 수 있었다. 또한 저궤도 위성은 고궤도 위성보다 기민하기 때문에 스타링크를 통해 러시어군의 위치도 빠르고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래저래 지상정보 기반의 군사작전을 전면 재검토하게 생겼다.

이와 같이 전쟁의 풍경은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SNS, 인터넷, 민간위성 등 개인과 기업의 다양한 오픈소스 정보전(Open Source Intelligence)이 전쟁의 새로운 판도를 만들고 있다. 비록 핵·미사일과 같은 위력은 없지만, 민간의 오픈소스정보가 전쟁의 수행방식과 여론을 변화시키는 힘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에서 예상과 달리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에 비해 열세인 정보력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오픈소스 정보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쟁은 인간정보, 기술정보, 영상정보, 신호정보, 공개정보를 한꺼번에 손안에서 처리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스마트폰과 SNS의 발전에 따라 시민들이 직접 본 것(인간정보)을 스마트폰으로 찍어(기술정보) 사진이나 동영상 형태(영상정보)로 SNS에 올려(공개정보)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방대의 포드 교수는 “손안의 기기 하나가 미디어를 생산하고 배포하고 소비하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적의 표적이 되는 수단도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바야흐로 전쟁이 내 손안에 들어 와 있다. 이미 보편화된 사이버전에 이어 스마트전·SNS전이 가세하고 여기에다 AI, IoT 기술까지 더해지면 전장(戰場)과 일상 생활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등 미래전쟁이 어떤 모습을 띨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오픈소스 정보로 군 정보력 열세 극복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러한 정보전의 양상 변화는 인류사회에 당장 큰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과 기업의 정보전 참여는 민간과 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는 전시 민간인 보호를 위해 군과 민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국제인도법(전쟁법) 원칙을 약화시켜 인도적 참상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국제인도법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 보호를 위해 이들에 대한 군사공격을 금지하고 있다(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 제51조). 동시에 민간인은 군사작전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만약 어길 경우 민간인 보호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시민이 SNS 등을 통해 군사정보 활동을 할 경우 이는 적군에게 그 시민들을 살상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위험이 있다. 다시 말해 시민들의 자발적 정보활동이 자칫 대규모 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정보전의 수행 주체가 기업으로 확대되는 경향도 일각의 우려를 낳고 있다. 기업의 전쟁참여가 확대될 경우 앞으로 전쟁의 민영화(Corporatisation of War)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다소 의문이지만, 앞으로 전쟁이 첨단화될수록 이 논란은 계속 될 것이므로 그 우려 자체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전쟁 참여는 ‘기업의 공익기여’라는 측면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도 있지만,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속성상 ‘전쟁의 상업화’라는 윤리적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이는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집단지성을 통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실무적 관점에서도 스마트폰과 SNS의 정보전 활용이 항상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스마트폰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꿈의 기기가 될 수 있지만, 방첩의 관점에서 보면 아군의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악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군사기밀을 온라인에 유포하여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미국의 테세이라 일병사건이 그 예이다.

우크라이나전은 아직 진행 중으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정보전이 전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평가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생활 속의 정보자산이 전쟁의 풍경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심리전·여론전·기만전과 결합한 러시아의 현란한 정보활용술,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김빼기 전략 등 불꽃 튀기는 정보 대결은 향후 정보전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도 꼼꼼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계속〉

「 오픈소스 정보 ☞ 인터넷, SNS 등 공개된 출처에서 얻은 모든 정보들.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미국은 2005년 11월 1일 국가정보국(DNI) 산하에 공개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오픈소스정보센터를 설립했다.

저궤도위성 ☞ 고도 300~1500㎞ 사이의 위성으로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훨씬 빠르지만 사용 수명이 비교적 짧다. 중궤도는 1500~1만㎞, 궤도는 1만~4만㎞, 정지궤도는 약 3만6000㎞.

최성규 고려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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