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동맹’ 첫 명시…북핵 억제 강화 레토릭 아니다

최익재 2023. 4.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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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전 대사 ‘워싱턴 선언’ 진단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을 방문해 관계자 설명을 듣고 있다. 다르파는 로봇·인공지능·음성인식기술 등 첨단 과학기술의 산실로 꼽히는 미 국방부의 핵심 연구시설로, 외국 정상의 방문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워싱턴 선언’에는 출범 1주년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외교 방향성이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윤 대통령은 20여차례 기립 박수를 받은 의회 연설에서 ‘자유’란 단어를 46차례 언급했고 사상 처음으로 미국 국방 수뇌부로부터 정세 보고를 받았다.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의 동맹을 최우선 기조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주요 방미 일정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미 편중이 중국·러시아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한국 외교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미 공사와 주 러시아 대사를 거쳐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에게 윤 대통령 방미의 성과와 분석을 들어봤다.

Q : ‘워싱턴 선언’ 어떻게 보나.
A :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중됨에 따라 자체 핵무장론과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윤 대통령의 방미는 한국이 다른 옵션들을 배제하고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확장억제의 강화란 측면에서 보면 실질적인 진전이 분명히 있었다. 이번에 신설키로 한 ‘핵협의그룹(NCG)’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기획그룹(NPG)’ 만큼 권한과 위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우리가 운영했던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보다는 비중이 있고 내실 있는 협의가 가능한 기구다. 북핵 억제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Q : 한·미 NCG는 어떻게 운영될까.
A : “아직 핵협의그룹의 권능과 범위는 확실하지 않은데, 좀 더 논의가 진전되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을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우리 측 준비가 덜 돼 미국을 따라가는 경향도 있었다. 특히 미국은 핵전략과 관련된 외부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번에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긴 ‘행동하는 동맹’이라는 용어다. 이전에는 없던 말이다. 동맹 강화나 확장억제 강화가 단순 레토릭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을 확실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위성락 사무총장은 “핵협의그룹 신설로 북핵 억제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Q : 워싱턴 선언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한·미 간 미묘한 인식차도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사실상 핵공유’라고 했는데, 에드가드 케이건 백악관 선임국장은 ‘사실상의 핵 공유라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A : “보는 관점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핵무기 자체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고 핵무기를 운용하는 작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최종 결정권도 미국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핵무기는 공유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참여하고 지원할 수 있게 됐는데, 넓은 의미로 본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과거에 비해 핵 운용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이므로 공유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고, 미국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핵 공유를 얘기한 것이다. 나토에서도 핵공유(nuclear sharing)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핵무기 공유(nuclear weapon sharing)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이처럼 핵공유라는 개념은 광범위한 측면이 있다.”

Q : 나토의 NPG와 NCG는 어떻게 다른가.
A : “나토의 NPG는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운용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함께 논의하고 나토 회원국들이 핵무기 투발 임무의 일부를 맡게 된다. 이에 비해 한·미 NCG는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의 핵무기 사용 계획 및 확장억제 계획을 함께 논의하게 된다.”

Q : 정부의 대미·대일 정책에 비해 대중국·대러시아 정책은 아직 분명하지 않은 느낌이다.
A : “이번 방미로 미국으로 기울어지는 외교 정책이 더욱 확실해졌다. 국내에서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의 좌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러시아와도 일정한 정도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해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지정학적 위치를 볼 때 한국이 주변 4강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는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Q : 국내의 독자 핵무장론자들은 이번 워싱턴 선언으로 인해 핵개발의 길이 막혔다며 불만이 작지 않다.
A : “외신들은 한국이 핵 개발 포기를 재천명하는 대신 미국의 핵사용에 대한 발언권을 키웠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적어도 윤 대통령의 임기 내에서는 핵 개발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체 핵 개발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출입이 경제의 근간인 나라가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 개발을 할 경우 이에 따른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Q : 핵 개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 능력을 일본 수준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 : “이 또한 비현실적인 얘기다. 자체 핵 개발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우리 국민의 경우 70% 넘게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원폭 피해를 입었던 일본에서는 핵 개발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다. 게다가 우리는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자체 핵개발을 시도했던 이력도 있다. 국제사회가 이런 분위기의 한국에게 핵 개발과 관련된 여지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

Q : 보다 분명한 언어로 한국의 입장을 밝히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적 논란을 빚는 경우가 역대 대통령에 비해 잦다.
A : “대통령의 외교 관련 발언은 정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개인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런 정치 행위에는 여론 및 민심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방 국가와 밀당하면서 점진적으로 외교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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