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려고 쓴 겁니다…그것도 진지하게, 욕망을 담아서[신새벽의 문체 탐구]
피메일스
안드레아 롱 추 지음·박종주 옮김
위즈덤하우스 | 208쪽 | 1만7000원
블로그 문체라는 것이 존재한다. 네이버, 티스토리 같은 블로그 서비스에 올라오는 일기에서 볼 수 있다. 장황하고, 진지하다가 ‘ㅋㅋ’거리다가 한다. 한 줄일 수도 있고 스크롤이 길어지기도 한다. 자기 이야기를 심하게 늘어놓는다.
고독한 블로거도 포스팅을 계속하다 보면 댓글이 달린다. 꾸준한 구독자가 생긴다. 어느 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다. 지면에 글을 싣게 되는 것이다. 블로거는 지면을 원하는 존재고 지면은 새로운 필자가 필요하다. 2020년대에 인문 편집자로 일하면서 블로그에서 활약하던 많은 사람들이 종이의 세계, 즉 출판계에 데뷔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블로그에 들어가서 청탁하는 댓글을 단다.
블로그 세계와 출판계가 상호 작용하는 오늘날 관전 포인트는 포스팅과 원고의 관계다. 원고에서 너무 점잔을 빼면 재미가 없지만, 포스팅에서처럼 남들을 마구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통 저자로 데뷔한 뒤에 블로그 포스팅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렇다고 다른 블로그를 안 보는 것은 아니다. 자기 글에 대한 반응이라도 검색하게 된다. 블로그의 막 나가는 말투, 지면의 신중한 태도는 서로를 의식한다.
안드레아 롱 추의 첫 번째 책 <피메일스>는 인기 블로그 문체를 구사한다. 롱 추는 199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2014년 듀크대를 문학 학사로 졸업했고 뉴욕대 비교문학 박사 과정을 다니고 있다. 웹진 ‘n+1’에 기고했고 뉴욕 매거진에 서평을 쓴다. 그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작가로, 자신의 성별 재지정 수술에 대해 쓴다. 이런 식이다.
“전부 다 여자다. 최악의 책들은 모두 여자가 쓴다. 지난 300년, 모든 위대한 예술적 깡패짓은 단독범이든 다른 여자들과 함께든 여자가 저질렀다. 좋은 여자 시인이란 없다. 좋은 시인 같은 건 없으니까.” 강렬한 서문이다. 그런데 왜 ‘전부 다 여자’라는 것일까?
‘피메일스(Females)’라는 제목은 영어 ‘우먼(women)’에 대응한다. 여자 대 여성. ‘여자들이란 하여튼’이라는 편견에 맞서 ‘여성은 만들어진다’라는 분석이 나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라는 개념에 힘을 준다. 이와 달리 롱 추는 여자밖에 없다고 한다. 갈등은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데에서 폭발한다. 트랜스젠더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여자라면 여자인 거겠지’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자는 억압된 존재인데, 왜 여자가 되길 원하느냐. 너 혹시 여자화장실에 들어가고 싶은 남자 아니냐.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롱 추는 말한다. “나는 여자다. 그리고 당신, 친애하는 독자여, 그대도 여자다.” 이쯤 되면 대체 여자가 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여자라는 것은, 어김없이,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여자를 수동적 존재로 정의해 버린다. “모든 사람은 여자고, 모든 사람은 이를 싫어한다.”
‘전부 다 여자’론을 적용하면 새 옷 자랑에 중독된 인스타그래머는 당연히 여자고, ‘좋아요’에 집착하는 페이스북 사용자도 전부 다 여자고, 야동이 아니면 흥분하지 못하는 연인들 양쪽 다가 여자다. 요점은 욕망의 근본적인 수동성이다. 모든 사람은 욕망에 휘둘리고, 모든 사람은 욕망에 휘둘리길 싫어한다. 그리하여 겁먹고 통제하려 든다.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며 페미니즘에 투신하는 사람들은 여자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2019년 <피메일스>가 출간되고 여성혐오적이라는 비난과 학술적 논쟁이 뒤따랐다. 듀크대에서 발행하는 ‘계간 트랜스젠더 연구’는 특집호 ‘안드레아 롱 추 이후’로 호응했다. 2023년 출간된 한국어판은 에세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를 추가하고 착 붙는 번역과 탁월한 해제까지 겸비한 걸작이다. 역자 박종주와 평론가 이연숙은 롱 추의 자학을 버거워하는데, 한국이 트랜스젠더에 더 적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부 다 여자’론은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이를 삶에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것.
확실히 롱 추의 블로그 문체는 버겁다. 문체는 얼마나 보여줄까, 어떻게 보여줄까의 문제다. ‘얼마나’의 차원에서 성전환 수술 후기를 쓰는 롱 추를 따르기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가 따르는 작가는 1968년 앤디 워홀에게 총을 쏜 미국의 여성주의자 발레리 솔라나스(1936~1988)다.
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아도 좋은 글을 쓸 수는 있다. ‘어떻게’의 차원에서 보면 롱 추는 “우스갯소리에 진심”이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절대 여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진지하게 웃긴다. 웃기려고 날뛰는 타입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뭔지 웃을 만큼 잘 아는 스타일이다. 트위터와 학술지를 오가는 롱 추는 인터넷 바다에 뜬 조각배 같은 지면을 폭발시키는 발화점을 안다. “독자가 맞닥뜨리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욕망이다.” 남의 욕망은 잘 읽어내면서 정작 자기 지면에서는 한없이 진지해지기만 하는 블로거들과 공유하고 싶은 경구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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