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비밀 발견했다”… ‘주가 폭락’ 핵심으로 지목된 라덕연은 누구인가 [미드나잇 이슈]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주가조작 의혹 핵심 인물로 투자자문업체 대표 라덕연씨가 지목됐다. 그러자 라씨는 지난 27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이 일련의 하락으로 인해서 수익이 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며 배후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라씨는 누구이고 어쩌다 주가조작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동국대학교 정보관리학과를 졸업한 라씨는 국민대에서 경영정보학 석사를 마쳤다. 당시 라씨는 트레이딩시스템을 전공했다고 한다. 라씨는 2014년 ‘수급 데이터를 활용한 KOSPI 200 선물 데이트레이딩 전략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석사 논문도 썼다.
라씨는 석사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투자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라씨는 2017년 이후 복수의 법인을 설립해 대표 자리를 맡았다. 그중 해산된 법인도 있고, 대표이사 자리를 넘겨준 곳도 있다.
라씨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2018년쯤이다. 복수의 언론은 2018년 초 교보증권이 해외선물 실전투자전략 설명회를 한다는 단신을 내보냈는데, 설명회 진행을 라씨가 맡았다고 전했다. 라씨는 ‘주식 및 해외선물 전문가’로 소개됐다.
현재 주가조작 의혹을 불러일으킨 일련의 행보는 2019년부터 그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씨는 2019년 3월 말 인천에서 ‘라덕연 투자 세미나’를 한다며 강의를 들을 사람을 모집했다. 당시 라씨는 “우연히 금융시장의 비밀을 발견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이렇게 쉬운 비밀이 정말 돈이 벌릴까 하는 의심으로 몇 년간 검증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 주제는 ‘돈으로 돈을 버는 자산주’였는데, 이는 최근 사건이 터진 뒤 사건 관련자들이 언론에 밝힌 투자개념과 유사하다. 라씨 일당에 30억원을 투자했다는 가수 임창정씨는 “이들은 저평가된 우량기업에 대한 가치 투자를 통해 재력 있고 신망 있는 유명한 자산가의 주식계좌를 일임받아 재테크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고 했다. 주가조작 세력이 본인들을 ‘가치투자자’라고 불렀다는 전언도 있다.
라씨의 이름은 2020년 11월 경기도의회에서도 소환했다. 당시 경기도의회 의장이었던 최만식 의원은 경기도체육회장의 기탁금 대납 의혹을 설명하며 라씨 이름을 꺼낸다. 체육회 통장에 ‘라덕연’ 이름으로 입금이 된 것을 지적하면서다. 최 의원은 당시 “체육회 행감(행정감사) 때 경기도체육회장 선거 기탁금 대납 의혹을 얘기했다”며 “그때 라덕연씨가 기탁금을 냈죠. 그리고 체육회에서, 선관위에 반납 다시 주고 이모 회장이 이제 내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후 채신덕 당시 의원은 “선거운동도 본인만 하게 돼 있고 본인이 알아서 해야 되는 건데 라덕연씨라는 분이 거기서 왜 등장을 하게 되는 거죠?”라고 물었고, 이 회장은 “저의 자금이 그쪽 투자회사에 가 있다”고 설명했다. 채 의원은 “라덕연씨가 대표로 돼 있는 회사에 이 후보의 돈이 투자돼 있어 가지고 거기서 좀 보내줘라 이렇게 얘기했단 말씀이죠?”라고 재차 물었고, 이 회장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한다.
다시 이번 사건의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사건이 터진 건 지난 24일. 이날 코스피 상장사 5곳(삼천리·대성홀딩스·서울가스·세방·다올투자증권)과 코스닥 상장사 3곳(하림지주·다우데이타·선광)이 하한가로 거래를 마감했다. 문제의 8개 종목은 장 시작부터 하락하다 오전 9시 30분을 전후로 일제히 하한가로 직행했다.
알고 보니 8개 종목은 SG증권 창구에서 매도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SG증권은 하루 동안 하림지주 191만2287주, 다올투자증권 61만6762주, 다우데이타 33만8115주, 세방 12만1925주, 삼천리 1만3691주, 대성홀딩스 1만1909주, 서울가스 7639주, 선광 4298주를 매도했다.
SG증권은 왜 이렇게 많은 물량을 하루 만에 쏟아낸 걸까. 그 배경엔 차액결제거래, 즉 CFD(Contract For Difference)가 있다. 일반에겐 생소한 CFD는 고객이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변동분에 대해서만 차액을 결제하는 총수익스와프(TRS)의 한 종류다. 증거금 40%만 있으면 2.5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100만 원어치 주식을 사려면 40만원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SG증권은 국내 주요 증권사들과 CFD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FD는 위험성이 크지만 투자 주체가 노출되지 않아 고액자산가들이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CFD는 차입 거래인만큼 상환시기가 되면 상환을 하거나 만기를 연장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보유 주식에 대한 반대매매가 이뤄진다. 이때까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특정 집단이 CFD를 통해 레버리지를 일으켜 주식거래를 대량으로 했고, 이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상환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증권사가 대량으로 매도에 나섰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의문의 1차 초점은 ‘특정 집단은 누구인가’에 모아진다. 그 집단으로 지목된 게 라씨 일당이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들 일당은 3년 전인 2020년부터 8개 종목의 주가를 천천히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일당들은 재력이 있는 전문직, 연예인 등에게 접근해 수익을 내주겠다며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확보한 이들은 통정매매 수법과 CFD를 활용했다. 통정매매는 상대방과 미리 가격과 수량을 정해놓고 주식을 사고파는 수법으로,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추거나 띄울 때 사용된다. CFD는 앞서 말했듯 2.5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투자 방법이다. 통정매매를 통해 주가를 띄울 때 CFD를 활용해 본인들 이익을 극대화한 것이다.
일당들은 자신들에게 투자를 일임한 투자자들 명의로 개통한 휴대폰을 활용했다. 이는 거래위치 추적 등 금융당국 의심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에게 투자한 투자자는 수백명 규모로,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럼 왜 하필 지난 24일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내부 관계자 중 누군가가 언론 취재와 금융당국 조사 사실을 알게 되자 의심을 피하고 투자 손실 위기에서 먼저 벗어나기 위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발생한 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가조작단은 왜 8개 종목을 ‘범행대상’으로 골랐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주가조작을 하려면 ‘조작’이 쉬워야 한다. 조작이 쉬우려면 주식 수가 적어야 한다.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100주인 회사 주가를 조작하는 게 유통주식 수가 1만주인 회사 주가를 조작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8종목의 평균 유동주식 비율은 40.55%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모든 상장사의 유동비율이 57.44%인 것을 감안하면 꽤 낮은 셈이다.
개별 기업별로 보면, 선광의 유동주식 비율은 38.3%, 대성홀딩스는 27.2%, 서울가스는 24.1% 수준이다. 삼천리도 45.3%로 50%를 넘지 않고, 다우데이타도 32.9%였다. 하림지주도 35%에 머문다. 세방의 경우는 50.5%로 절반을 겨우 넘겼다. 다올투자증권은 유일하게 유동주식 비율이 71%로 평균을 넘는다.
빚을 내 투자하는 신용거래 비중이 높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들의 신용융자 잔고비율을 살펴보면 지난 25일 기준 선광은 12.3%, 대성홀딩스 6.71%, 서울가스 7.6%, 삼천리 10.4%, 세방 12.7%, 다우데이타 11.2% 수준이다. 대부분이 10%를 초과한다. 하림지주와 다올투자증권도 각각 7.6%, 14.8% 수준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사태가 발생하기 전 코스피 전체 종목의 5일(17∼21일) 평균 신용융자 잔고율은 0.98%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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