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부터 6·25까지…中, 윤석열 정부에 사사건건 트집
중국 외교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27일(미국 시각) 미국 의회 연설 중 ‘미군이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위를 기적적으로 뚫었다’고 말한 것과 관련, ‘장진호 전투는 중국의 승리였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북한이 남침한 6·25를 중국이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한 항미원조(抗美援朝·The War to Resist US Aggression and Aid Korea) 전쟁’이라 부른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26일(미국 시각)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포함된 데 대해, 그 직후 주중 한국 대사관 공사를 불러 항의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한·미 동맹 강화와 한국 정부의 대만 문제 언급 등에 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27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영어 연설에서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과 희생을 언급하며 “미 해병 제1사단이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의 포위를 기적적으로 뚫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아들딸은 그들이 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며 “장진호 전투에서만 미군 4500명이 숨졌으며, 전쟁을 통틀어 미군 3만7000명이 전사했다”고 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 중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 해병대 제1사단이 장진호 전투 중 중공군 12만 명을 돌파한 인해전술로 기적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말한 데 대한 중국 측 논평 요청에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는 중국과 세계 모두에 중대하고 심원한 의의를 갖는다고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중국이 미군을 물리치고 항미원조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마오닝은 “(항미원조 전쟁은) 어느 국가나 어느 군대나 역사 발전 조류의 대립면에 서서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침략을 확장하면, 반드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란 철석 같은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줬다”고 했다.
마오닝은 장진호 전투에서도 중국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마오닝은 “장진호 전투에 관한 중국 측 전쟁사 기재에 따르면, (중공군이) 3만6000명의 적을 섬멸했으며, 그중 미군이 2만4000명이었으며, 미군 1개 연대를 전멸시켰고, 미군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도 혼란 속에 차가 전복돼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은 (장진호 전투를) 미국 역사상 가장 노정이 긴 패퇴라 불렀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은 철저히 중국 시각에서 6·25를 중국의 승리로 미화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다르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과 중공군이 1950년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부근에서 벌인 전투다. 미 해병 제1사단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북진하다가, 11월 27일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매복 작전에 포위됐다. 미군(1만5000여 명)은 7개 사단(12만여 명)이 포위한 중공군에 수적으로 완전 열세였다. 그러나 미군은 17일간의 혈투 끝에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 퇴각했다. 미군은 2주간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며 흥남철수 작전을 펼쳐 민간인 10만여 명도 구조했다. 당시 미군 45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75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중공군은 미군보다 세 배 넘게 더 많은 사상자를 냈다.
중국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과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72주년을 기념해 2021년 10월 영화 ‘장진호’를 개봉하기도 했다. 영화엔 1949년 신중국 건국을 선포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미군 폭격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담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10월 항미원조 참전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6·25를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중대 이정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와 별도로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이 언급된 것을 두고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는 “류진쑹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담당 국장)이 27일(중국 시각) 밤 주중 한국 대사관 강상욱 공사와 면담하고, 미·한 연합 성명의 중국 관련 잘못된 표현에 대해 엄숙 교섭을 제기하고, 강렬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28일 오전 웹사이트를 통해 밝혔다. 또 “대만 등 문제에 관한 중국 측 엄정한 입장을 강조하고, 한국 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절실하게 지킬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외교 상대국에 엄숙 교섭을 제기했다는 것은 상대국에 외교 경로를 통해 항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 공사는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의 바로 아래 직급인 정무공사를 맡고 있다.
중국 측이 얘기한 한·미 정상 공동성명 속 ‘중국 관련 잘못된 표현’은 대만 해협과 인도-태평양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엔 “양 정상은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필수 요소로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양 정상은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 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하여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했다” “유엔 해양법 협약에 명시된 바에 따라 남중국해 및 그 이원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서의 방해받지 않는 상업,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 해양의 여타 합법적 사용을 보존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란 내용이 담겼다. 한·미는 중국을 겨냥하면서도 공동성명에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중국의 앞선 격한 반응을 고려해 수위를 낮춘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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