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치 외교’에 매몰된 대통령 방미, 후폭풍은 어떻게 할 건가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미국 의회 연설을 했다. 1874년 당시 독립 국가였던 하와이의 칼라카우아왕이 연설한 뒤 외국 정상으로는 123번째이다. 영어원고를 읽은 윤 대통령의 연설은 미국이 듣기 좋아하는 얘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던 목적만은 달성한 것 같다. 청중석의 미 의원들은 여러 차례 기립박수, 환호로 화답했다. 문제는 내용이다. 그의 연설은 자유를 키워드로 해서 가치동맹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자유’라는 단어를 대통령 취임사 때보다도 많은 46회 언급했다. 올해 70년을 맞는 한·미 동맹이 북한의 남침에 따른 한국전쟁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자유를 언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시점에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맞선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를 말하는 것이 지금 세상의 복잡성을 얼마나 반영하는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해 설계된 인도·태평양 전략의 충실한 파트너 역할을 다짐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더 가속화할 것이며, 우크라이나를 위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그는 한·미 동맹을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동맹”이라며 “동맹은 정의롭다”고 했다. 동맹을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관점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 중심 외교가 실리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다. 당장 윤 대통령은 방미 후 중국발 후폭풍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7일 밤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를 초치해 한·미 정상 성명의 대만 관련 표현에 항의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벌써부터 중국의 경제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러시아와의 갈등이 한반도 안보에 미칠 부작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이번 방미에서 정부가 최대 성과로 꼽는 한·미 핵협의그룹 신설과 관련해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됐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이 협의체를 통해 “사실상의 핵공유”를 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한 데 대해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보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28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평가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는 30%에 불과하고, 부정 평가한 이유 중 1위가 외교(38%)였다. 실리를 챙기지 못한 윤 대통령 국빈 방미에 대한 싸늘한 평가다. 윤 대통령은 백악관과 의회의 뜨거운 환대의 추억에 젖어 귀국길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외교적 반작용에 얼마나 대비돼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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