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울렁증과 작별하는 한국 [만물상]
한국인은 영어 울렁증이 심했다. 영어만 나오면 주눅이 들고 말문이 막힌다. 국제 행사에서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한마디도 않고(silent) 어색하게 미소 짓다(smile) 존다고(sleep) 해서 ‘3S’라 불렸다. 국제 행사 구석 자리로 피해서 보면 일본인이 와 있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들도 영어 기피증이 있었다.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How are you?”를 잘못 발음해 미국 대통령에게 “Who are you?”라고 묻는 결례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어를 쓰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제 회의 때 외국 정상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역이었다. 정상들만의 의전 행사에도 수차례 불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통역에게 “저 사람이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 빨리 통역하라”고 하는데도 웃고만 있었다.
▶프린스턴대 박사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영어에 가장 능통했다. 배재학당 학생 때 외국 손님들 앞에서 영어 웅변을 했다.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으면서 혼자서 영어 사전을 썼다. 미 의회에서 한국 대통령 최초로 영어로 연설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개 연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실전 영어로 정상들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늦게 영어를 배워 수시로 영어 연설을 했지만 미국 청중은 잘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외국어 소질이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미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했다.
▶국제 무대 영어 울렁증을 깬 건 한류 스타들이었다. BTS는 2018년 유엔 총회에 초대받아 각국 정상들 앞에서 연설했다. 유창한 영어로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를 외쳤다. 이는 블랙핑크와 에스파로 이어졌다. 배우 윤여정씨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순하면서도 쉬운 영어로 좌중을 쥐락펴락했다. 이제 우리 기업 CEO들도 국제 무대 영어 대화가 자연스럽다. 청년층은 유학을 가지 않아도 영어에 큰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좋은 발음뿐 아니라 적절한 농담과 즉석 발언까지 담겼다. 연설 전후 미 의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셀카를 찍었다. 정상 만찬에선 바이든 대통령 아들의 애창곡 ‘아메리칸 파이’ 노래도 불렀다. 한국 대통령이 미 의회와 백악관 행사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당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경제 발전의 결과일 것이다. 이젠 국제무대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한국인’의 시대와는 작별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법부 흑역사…이재명과 끝까지 싸울 것” 비상투쟁 돌입한 민주
- 방탄소년단 진의 저력, 신보 ‘해피’ 발매 첫날 84만장 팔려
- [부음]김동규 한신대학교 홍보팀장 빙모상
- 소아·청소년병원 입원 10명 중 9명, 폐렴 등 감염병
- “오 마이”… 린가드도 혀 내두른 수능 영어 문제, 뭐길래
- 목포대-순천대, ‘대학 통합·통합 의대 추진’ 합의...공동추진위 구성
- “이스라엘, 지난달 보복공습으로 이란 핵 기밀시설 파괴”
- 한국 문화 경의 표하는 ‘구찌 문화의 달’ 참여 거장들, 기부 결정
- 국힘 “오늘 대입 논술시험…野, ‘범죄자 비호’ 집회로 입시 방해”
- 민주, 李선고에 “정적 죽이기 올인한 대통령, 동조한 정치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