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등 돌린 펜스, 5시간 대배심 증언… 의회 폭동 '스모킹 건' 꺼냈나
"1·6 사태 관련 대배심 판단에 결정타 될 것" 전망
같은 날 '성폭행 의혹' 재판서도 피해자 법정 진술
'미국 역대 대통령 첫 형사 기소'라는 불명예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새로운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동안 '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에는 거리를 뒀던 트럼프 행정부의 '2인자'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 대배심 진술을 강행한 것이다. 게다가 같은 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여성도 법정에서 그를 직격했다. 지난달 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관계 입막음 돈 지급' 의혹과 관련, 기업문서 조작 혐의로 기소된 후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하긴 했으나, 이번 사안들은 좀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치적 악재'가 분명하다는 얘기다.
펜스, 5시간 동안 대배심서 증언… 발언 내용은 비공개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펜스 전 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워싱턴 연방법원에 비공개로 출석했다. '1·6 의회 난입 사태' 등을 수사 중인 잭 스미스 특별검사의 소환 요구에 응해 이 사건 핵심 증인 신분으로 대배심에 출석한 것이다. 그는 5시간 이상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배심 진술 비공개' 원칙에 따라 발언 내용이 함구에 붙여진 탓에 현재로선 펜스 전 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증언을 했는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1·6 의회 사태를 조장했다는 혐의를 받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올해 1월부터 특검에서 수사를 받은 펜스 전 부통령의 보좌관과 변호인단이 부정적 언급을 이어간 데다, 지난 24일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펜스 전 부통령조차 "트럼프가 잘못 행동한 그날의 진실을 말하고 (출두 시) 대배심 법정에서 법을 준수하겠다"고 미리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간된 회고록에서도 펜스 전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상반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이 책에서 "2021년 1월 6일 무렵 '2020년 대선 결과를 거부하라'는 트럼프의 압박을 받았지만,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펜스는 '약한 고리'... "트럼프 유죄 증거 될 것"
펜스 전 부통령은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약한 고리'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현 대통령)한테 패배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펜스 당시 부통령에게 "대선 결과를 승인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연방법상 대선 결과는 부통령이 승인한다. 게다가 의회 난입 사태 전후 그의 지위를 고려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속내와 의도를 제일 잘 알 수밖에 없는 위치에도 있었다. 스미스 특검 입장에선 펜스 전 부통령의 한마디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를 입증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일 가능성도 크다.
현지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은 "펜스의 증언은 2020년 11월 미 대선과 이듬해 1월 6일 당일까지 트럼프의 대화와 행동에 대한 추가적인 세부 사항을 대배심에 제공할 것"이라고 짚었다. NYT도 "(펜스의 증언은 같은 기간) 트럼프의 대화와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대배심에 제공할 결정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성폭행 피해 사건 등 남은 트럼프 소송도 '진행 중'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는 더 있다. 199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폭행 의혹과 관련,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3차 변론이 같은 날 뉴욕 연방법원에서 열린 것이다. 이날 성폭행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칼럼니스트 진 캐럴은 법정에서 "트럼프는 내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계속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왜 사건 직후 성폭행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도 "보복이 두려웠다. 그리고 그 보복이 있었다는 게 오늘 법정에서 증명됐다"고 대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휘말린 법적 다툼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조지아주 개표 개입 의혹, 대통령 퇴임 직전 기밀문건 유출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또, 지난 2월 자신과의 인터뷰 오디오북을 발간했다는 이유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을 고소한 사건, 자신의 거액 탈세 의혹을 제기한 조카 등을 상대로 한 손배해상 청구소송 등 원고로 나선 사건도 다수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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