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화물연대에 “안전운임제 연장” 합의해놓고…ILO엔 딴말?
지난해 6월 14일 오후, 꽉 막혔던 우리나라 물류의 숨통이 트였습니다.
이날 국토교통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는 총파업 8일만에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고, 화물연대의 1차 파업은 철회됐습니다.
국토부와 화물연대는 각각 보도자료를 내고, 5차 실무교섭에서 합의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아래는 국토부가 배포했던 보도자료 일부입니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국회 원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 국회에 보고 ▲ 현재 운영 중인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컨테이너, 시멘트)를 연장 등 지속 추진 ▲안전운임제의 품목확대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에 보낸 의견서에서 위의 내용을 전면 부정했습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ILO 사무국에 제출한 정부 의견서를 입수해 확인해봤더니, 정부는 '화물연대와 2022년 6월 합의에 도달한 바 없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왜 있었던 일을 없다고 하는 걸까요. 또 왜 하필 화물연대도 아닌 국제노동기구(ILO)에 이런 항변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안전운임제 두고 강대강 대치...결국 ILO까지 갔다
지난해 6월 정부와 화물연대 간 합의의 쟁점은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이었습니다.
안전운임제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기반해 운수사업자 또는 화물차주에게 지급하는 최소 금액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안전운임'을 쉽게 생각하면 화물차 운전자의 '최저임금'격인 셈입니다.
안전운임제는 2022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이 있는, 일몰 예정이던 제도였습니다. 화물연대는 일관되게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해왔고, 지난해 6월 협상 이후에도 일몰제 폐지 논의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로 연말을 맞았습니다.
결국 11월 24일, 화물연대의 2차 총파업이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명분 없는 이기적 행동"이라며, 곧바로 '업무개시 명령'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이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엔 30일 운행정지·자격취소 등 행정처분은 물론이고,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이하 벌금형 등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국제노동기구(ILO)가 등장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이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이 ILO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며 ILO에 긴급 개입을 요청한 겁니다.
노조는 이어 정부의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에 관한 ILO 협약(제87호, 제98호) 위반 등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제소문을 그 해 12월 ILO에 정식 제출했습니다.
마침 2021년 4월, 우리나라가 ILO 기본협약 제87호·제98호·제29호를 비준하면서, 해당 조항이 지난해 4월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결국 ILO 사무국의 개입 절차에 따라 정부는 올해 3월 13일 의견서를 보낸 겁니다.
■다시 맞붙은 노조와 정부…"내 머릿속의 지우개?" VS "해석 차이"
고용노동부에서 작성한 정부 의견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6월 화물연대 협상 때와는 다소 상이한 주장을 펼칩니다.
의견서에서 정부는 "정부와 화물연대는 2022년 6월 합의에 도달한 바 없습니다"라며, " 당시, 정부는 단지 화물연대와 안전운임제에 관한 불만에 대해 논의를 지속하자고 협의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작년 6월 '현재 운영 중인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컨테이너, 시멘트)를 연장 등 지속 추진'하겠다는 내용과는 차이가 드러납니다.
정부는 이어 "안전운임제 기한 연장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국회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이며, 정부는 이에 대해 사전에 동의하거나 약속할 수 없는 사항"이라며, "화물연대도 당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외에도 정부는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에 대해 " 화물연대는 노조법에 따른 설립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조법상 단체행동권 및 단체교섭권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업무개시 명령과 관련해서는 "집단운송거부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피해는 한국 경제는 물론 국민의 생명·건강·안전에 실질적 위협을 가했다"며, "이 위기가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근거한 위기경보 최상위 단계인 ‘심각(red)’ 단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기에 정당했다고 정부는 반박했습니다.
■정부 의견서에 노조 재반박..."명백한 왜곡"
정부 의견서에 대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은 이번달 5일 ILO에 반박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노조는 먼저 정부가 작년 6월 합의를 부인하는 점에 대해선, "당일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본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명백한 왜곡"이라 주장했습니다.
화물연대가 설립신고를 하지 않아 법적으로 노조 지위를 갖고있지 않다는 정부 주장엔, " 화물연대본부는 설립신고 된 산업별 노동조합인 공공운수노조의 산하조직으로 별도의 설립신고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맞받았습니다.
또 "ILO 협약 제87호 제2조는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단체를 설립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화물연대본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기 위하여 반드시 설립신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노조는 밝혔습니다.
결국, 이미 설립신고가 된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하부조직인 화물연대가 '설립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조활동이 ILO 기준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미 이뤄진 안전운임제 일몰...그 이후는?
지난해 12월 31일 이미 안전운임제는 일몰 수순을 밟았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ILO 개입 및 제소 절차가 남은 가운데,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대체하는 법안을 내놨습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안전운임제보다 강제성이 줄어든 표준운임제 도입을 발표했습니다. 표준운임제는 기존 안전운임제의 핵심 내용이었던 '화주 처벌 규정'을 삭제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정도로 완화했습니다.
기존 안전운임제를 적용했을 땐, 화주가 최소 운임보다 적은 운임을 지급할 경우 5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장 화물연대는 "표준운임제는 개악"이라며, 차주의 책임을 경감한 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당정은 표준운임제의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지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을 주장하고 있어 향후 입법에 진통이 예고됩니다.
배지현 기자 (veter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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