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 ‘준강간 미수’ 무죄, ‘피해자다움’ 강요한 판결 아닌가

한겨레 2023. 4. 2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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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지난 27일 만취 상태의 여성을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법원이 '피해자다움'을 유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가해자 중심적' 판결을 했다는 비난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성폭행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가해자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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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만취한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에게 무죄를 확정한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대위 관계자들이 대법원 판결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지난 27일 만취 상태의 여성을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법원이 ‘피해자다움’을 유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가해자 중심적’ 판결을 했다는 비난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7년 5월 발생한 이 사건은 여성들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당하는 전형적인 ‘준강간’에 해당된다고 본다. 준강간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인 사람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하는 범죄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성폭행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가해자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ㄱ씨는 서울 홍대의 한 술집에서 가해자 ㄴ씨를 처음 만나 술을 함께 마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 ㄴ씨는 만취한 ㄱ씨를 경기도 한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애초 ㄴ씨를 불기소했지만, 법원이 피해자 ㄱ씨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ㄴ씨는 준강간 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 재판은 배심원 7명 중 5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는데, 검찰이 재판에서 ‘불기소 의견’을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공소유지에 소극적이었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도 “준강간의 고의 등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의심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 재판부가, 피해자 ㄱ씨가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ㄱ씨가 술집에서 ㄴ씨와 스킨십을 한 사실 등을 근거로 “준강간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ㄱ씨의 행동이 피해자답지 않다고 본 듯한데, 이는 2019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에서 정립된 ‘성인지 감수성’ 판례와 충돌한다. 당시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성폭행 피해자의 관점과 맥락에서 유무죄 여부를 판단한 ‘안희정 판례’는 하급심에서 많이 인용될 정도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판결이었다. 이번 준강간 무죄 확정 판결이 오랜 법리논쟁 끝에 정립된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뒤흔드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사법부는 그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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