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왕실도, 내각 절반도 보모는 이 학교 출신...놀런드 칼리지”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4. 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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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ㆍ캐드버리 전통 귀족 가문부터 테크 억만장자, TV 스타의 보모 배출
FT “초봉 6680만원부터 시작...졸업하면 평균 14군데 일자리 선택”

영국 사회에 보모(保姆)가 미친 영향을 쓴 한 저술가는 “지난 100년, 150년 동안 우리[영국인들]의 삶을 지배했던 이들의 대부분은 보모(nanny)에 의해 키워졌다” “그들의 태도와 행동은 제국을 지배하는 사회의 결과물이었지만, 동시에 그 사회는 그들이 낳은 결과였다”라고 썼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매거진은 27일 ‘로열 내니(Royal Nanny)라고 불리는 영국 왕실의 보모(保姆)를 배출했고, 영국 내각 장관들의 절반이 이 학교 출신 보모를 고용하는 최고의 보모 육성 대학인 영국 잉글랜드의 바스(Bath)에 소재한 130여 년 역사의 놀런드 칼리지(Norland College)를 집중 조명했다.

현재 윌리엄 왕세자 부부의 아들 조지와 딸 샬럿을 키우는 마리아 테레사 보랄로가 30년전 이곳을 졸업한 ‘놀랜더(Norlander)’이고, 역사적으로도 놀랜더들은 영국뿐 아니라, 러시아ㆍ스페인ㆍ세르비아 왕가와 유럽 귀족 가문의 아이들을 키웠다.

영국 왕실의 '로열 내니'가 된 스페인 출신의 놀런드 졸업생 마리아 테레사 보랄로가 2015년 놀랜더를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고 당시 윌리엄 왕세손의 아들 조지 왕자를 돌보고 있다./핀터레스트

놀랜더는 1972년 유럽의회에서 최초의 영국 출신 의원이 된 스탠리 존슨의 두 자녀 보리스와 레이철을 키웠고, 보리스는 나중에 영국 총리가 됐다. 영국의 대표적인 부호 귀족 가문인 캐드버리ㆍ레키트ㆍ로스차일드 집안의 수십년간 보모도 놀런드 칼리지 출신이었다. FT 매거진은 “놀런드 칼리지는 다음 세대도 부와 권력을 누리기를 원하는 부모들과, 이들에게 고용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 모두가 찾는 학교”라고 전했다.

2013년 놀런드 칼리지가 재학생들의 외출용 교복을 70년 만에 새로 바꿨을 때에는 그것 자체가 BBC 방송에서 뉴스가 됐다. 왼쪽은 이전 외출복, 오른쪽 짙은 갈색은 바뀐 외출복./놀런드 칼리지

이 학교 학생과 졸업생을 일컫는 ‘놀랜더’들은 복고풍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아기 재우기, 젖떼기, 옷 수선, 식사예절 가르치기, 음식 만들기 등 전통적인 업무에서부터 호신술, 소셜미디어 교육, 성(性)정체성 안내, 상류사회 대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목을 3년 간 집중적으로 배운다.

FT는 “옥스브리지나 명문대 출신 친구들도 구직하느라 애쓰는데, 놀랜더는 1명 당 14군데 정도의 보모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으며, 초봉은 4만 파운드(약 6680만원)에서 시작해서 빠르게 10만 파운드 이상으로 오른다”고 전했다. 놀랜더들의 고용주도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세습 귀족 가문에서, 테크 억만장자ㆍTV 스타ㆍ 이민2세대 부호들로 확대됐다.

◇”아이들과 학교 명성에 해(害)가 될 행위 안 한다” 서약으로 입학

놀런드 칼리지의 신입생은 자기들이 보살필 아이들(charges)과 학교 명성에 해(害)가 될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촛불 서약식을 하고 입학한다. 이후 놀랜더들은 매일 흰색 칼라가 달리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베이지색 치마를 입고, 롤빵 머리를 고정하는 망(網)으로 머리를 묶고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수업을 한다. 외출 시에는 N자가 수놓여진 갈색 중산모를 쓴다.

교복을 입는다는 것은 자아를 탈피하고, 스스로 자유를 구속한다는 뜻이다. 학교가 있는 바스 지역의 공공 장소에서 교복을 입은 놀랜더들은 헤드폰을 쓰거나 술을 사거나, 휴대전화 통화도 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의 놀랜더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학생들이 주차를 잘못하거나 공공 장소에서 너무 크게 말하면 대학에 바로 항의 전화가 온다고 한다.

이 학교는 1892년에 영국에서 보육 교육의 선구자였던 에밀리 워드가 설립했다. 워드는 빅토리아 여왕 당시 영국 상류층에서 문맹(文盲)의 하층민 보모가 아니라, 보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고등(高等)교육을 받은 보모들에 대한 수요가 매우 큰 것을 확인했다.

그는 중산층 출신의 보모를 전문적으로 육성해서 고용한 집안의 습관과 매너를 공유하고, 또 보모 비용도 더 높게 청구할 수 있는 대학을 설립했다. 작년 9월 이 학교에는 102명의 여성과 2명의 남성이 새로 입학했다. 학비는 연간 1만5000 파운드. 외국인은 1만8000파운드라고 한다.

◇”개인적 자유 포기는 마치 주님께 헌신하는 것과 비슷”

학생들은 이곳에서 부유하고 귀족인 집안에서 선호하는 것들을 만족시키는 세부 사항을 배운다. 또 고용 집안에서 함께 사는 보모가 되면, 개인적인 자유는 일부 포기해야 한다. 개인적인 외출은 없고, 물론 술에 취해서도 안 된다. 1930년대에 놀랜더가 된 한 여성은 “주님께 나 자신을 바치는 것과 좀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놀랜더 보모들은 과거 귀족 가문이 고용할 때에 기대했던 자격 수준을 넘어서, 요즘은 국제적인 사건에 대한 기본 지식, 아이들 파티를 기획하는 독창성, 일부 고용주에 따라서 이슬람의 주요 날짜에 대한 지식도 갖춰야 한다. 이들이 kids가 아니라 children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소셜미디어 사용법, 성 정체성 관련해 잘 인도하는 것도 포함된다. 즉, ‘복고풍’이라는 학교의 기본 정신을 핵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보모가 돼야 한다고 한다.

FT는 “학생들에게 보모는 일종의 소명(calling)같은 것이어서, 어머니, 할머니가 놀런드 출신 보모였던 학생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푸틴과 트럼프가 놀런드 보모를 만났다면…”

이 학교 교장인 재닛 로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의 친(親)푸틴 신흥 재벌들인 올리가르히가 제재를 받아 학교도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는 FT 질문에 “돈만 많다고 놀랜더를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놀랜더가 히틀러의 보모가 되게 방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세계 평화로 가는 길”이라며 “다른 사람과의 공감, 자기 절제는 모든 것의 기초다. 푸틴이나 트럼프가 놀랜더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했다.

많은 졸업생은 런던의 대표적인 부촌인 첼시ㆍ하이게이트ㆍ켄싱턴에서 고용 가족과 함께 살거나, 고용주가 지불한 아파트에 산다. 하도 길거리에 보모가 많아서, ‘기저귀구(區ㆍNappy Borough)’라 불리는 지역이다. 또 고용 가족의 다른 직원들과 함께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ㆍ두바이ㆍ모나코 등지의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집으로 대륙을 건너가기도 한다.

보모들은 정치ㆍ성생활ㆍ험담ㆍ비판적 발언ㆍ종교ㆍ돈ㆍ계층에 대한 얘기는 피하도록 교육 받는다. 엄격한 채식주의자(vegans)인 보모라 할지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생선을 능숙하게 손질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또 이 학교에선 ‘천 친구(fabric friend)’라고 부르는 인형을 만드는 바느질도 배운다. 종종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려다가 이곳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부촌의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옥스브리지를 졸업하고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를 마주치기도 한다고 한다.

이곳 출신 보모들은 그러나 결국 가족의 부, 지위에 관계 없이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애정과 시간, 자기를 안아주고 알아봐주는 사람”이라고 FT에 말했다. 이들은 그들을 고용한 부모가 중요한 평화 중재 협상을 하거나 이혼 소송을 밟는 동안 아이들을 맡아서 키운다. 어떤 부모는 구찌 아동복 신상품이 출시되는 날, 아이들이 그것을 꼭 입을 수 있도록 당부하기도 한다.

◇영국 상류층에 영향을 미친 보모의 역할

윈스턴 처칠은 자신의 어린 시절 보모 엘리자베스 에베레스트의 임종을 지켰다. 그는 “나의 (초기) 20년 전체 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고 친밀한 친구”라고 말했다. 보물섬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자신의 보모를 “나의 두번째 엄마, 첫번째 아내, 어린 시절의 천사”라고 회고했다. 현재 영국 보수당의 하원의원인 제이콥 리스-모그는 자기를 키워준 보모에게 다시 자녀들을 맡겼다.

‘영국 보모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쓴 조나단 개손 하디는 보모가 주입한 강력한 도덕 규범이 영국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또 보모가 있었기에, 영국인들은 자유롭게 탐험하며 남의 땅을 식민지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혈연이 아닌데도, 자신의 꿈과 발전을 공유하고 장려하는 보모에 의해 키워진 아이는 심리적 자유와 안정성, 우월함을 가질 수 있었다.

영국의 유아교육 전문가인 헬렌 모일렛은 FT에 “영국 정부 내각의 절반은 놀런드 보모를 두고 있다”며 “그들은 뭐가 자녀들에게 제일 좋은지 알고 있고, 그걸 지불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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