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군번오류 발생 5개월째…아직 원인도 파악 못한 軍
軍 "원인·피해장병 확인 중"
소극적 대처·늑장대응 도마
육군 "책임자 나오면 조치"
지난해 '22년 군번' 장병 4900여 명에게 '23년 군번'을 부여하는 행정 착오가 벌어졌으나 육군은 아직 책임자에 대해 징계나 제대로 된 원인 파악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착오 발생 5개월, 육군이 이를 인지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으로부터도 한 달 반 이상의 시간이 흐르도록 책임 소재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육군이 피해 장병들의 군번을 정정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책임 또한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군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27일 육군본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이번 '군번 착오 부여 사고'로 인해 징계 처분을 받은 인원은 없다. 또한 육군은 현재까지 징계 조치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으며, 이번 사건의 원인도 여전히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육군 관계자는 "행정 착오자에 대한 징계 조치 여부는 관련 부서에서 확인 중에 있다"며 "지금 원인과 배경 등을 확인하고 있고, 인원도 특정되지 않아 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군은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장병 4916명의 군번을 행정 착오로 잘못 부여했다.
그 뒤 피해 장병들에게 '정정할 사항'이 많다는 이유로 군번 정정을 사실 거부한 바 있다. 당시 육군은 장병들의 양해를 구했다고 밝혔으나, 정작 피해 장병들은 정정을 요구할 수 없는 압박 속에서 조사가 이뤄졌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피해 장병 A씨는 "군번을 고쳐 달라고 손 들면 이상해지는 분위기로 몰고 갔다"며 "단순히 행정적 절차가 어렵고 복잡하다고, 현행 유지가 편하다는 이유로 군번을 유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군이 '군번 유지'를 사실상 강요하고 동시에 아직까지 사고의 책임조차 묻지 않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고에 대해 축소 내지 은폐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군은 피해 장병들의 입대일로부터 길게는 5개월, 군이 행정 착오를 인지했다는 3월 초부터는 한 달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났으나 책임 소재를 파악하기는커녕 여태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 장병들의 소속 부대 지휘관이 직접 군번 정정 또는 유지에 따른 영향 등을 설명한 것도 논란을 어물쩍 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군사 전문가는 '윗선의 진급'을 위해 이번 사고를 은폐하고자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 전문가 A씨는 "분명히 이번 사건은 높은 사람의 진급이 걸려 있을 것"이라며 "보통 일이 아닌데 윗선이 진급에 방해를 받을까봐 장병들에게 별것 아니라는 방식으로 묻고 지나가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건 단순히 행정 착오 실무자를 꼬리 자르기 식으로 징계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은폐 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의 소극적인 대처와 늑장 대응이 드러난 사고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징계는 둘째 치고 원인 파악도 진행 중이라는 건 '군이 과연 해결 능력이 있는 집단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끔 한다"며 "'군이 문제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다 보니 반복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한편 육군은 먼저 행정 오류에 대한 식별을 하고 양해를 구한 건 군이라면서 의혹을 일축하고 나섰다. 육군본부 관계자는 "행정 착오가 개인의 문제인지 시스템 전체의 문제인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 소요가 있는 것"이라며 "만약 정말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그걸 확인해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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