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발의 3년, 여전한 차별···“혐오가 일상이 될까 두려워”
“지난 4·16 세월호 9주기 기억식에 다녀왔습니다. 안산 화랑공원에서 누군가 확성기를 켜고 참사 피해를 조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0·29 이태원 분향소 근처에도 현수막으로, 확성기로 혐오표현이 늘 근처에 있었습니다. 혐오가 일상적인 모습이 된 것인가 싶어 종종 두려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이 발의된 지 3년을 맞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28일 개최한 ‘대한민국 혐오차별 현실 진단 대토론회’에서 한 발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여성 노동자·장애인·성소수자 인권을 대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동안 각계에서 쌓여간 혐오차별 문제를 짚었다. 이들은 법안 심사 기한인 2024년 5월말까지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종·성적지향·나이·학력 등 모든 유무형의 차별을 금지하자는 차별금지법은 17대 국회 당시인 2007년 처음 발의된 뒤 18·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2020년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을 포함해 4건이 계류돼 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차별금지법은 평등을 위협하는 차별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단초”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지난 3년 각 분야의 활동가들은 “인권 문제가 전방위적으로 쇠퇴했다”고 입을 모았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지난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한시적으로 월 100만원에 고용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인권 후퇴의 근거로 꼽았다. 배 대표는 “가사노동자들은 이미 여성의 업이란 인식으로 평가절하 당하고 있는 현실”이며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 지금도 더 긴 시간을 일하고도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법안이 이중적인 혐오차별이 담긴 법안이라 비판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학생인권조례조차 학교 안에서 자리를 잃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직 교사인 우돌 활동가는 “차별이 폭력으로 나아가지 않게 논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라며 “이미 학교폭력이 발생한 이후에 학생과 부모는 ‘가해자의 처벌’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악순환이 학교 내에서 차별과 폭력을 제대로 다룰 수 없게 만든다고 짚었다.
지체장애인인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장은 “차별을 겪어도 차별인지도 모르고,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살아왔었다”고 했다. “음식점에 갔다가 쫓겨나는 일,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왜 길을 막냐 욕을 먹는 일은 일상”이라고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서울교통공사에서 장애인에 대한 혐오성 발화를 전한 후에는 시민들의 눈빛이 더 매서워졌다”고 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더 느낀다고 덧붙였다.
청년 성소수자들을 대표해 토론에 나선 정성조 성소수자차별연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직장 등 곳곳에서 차별을 경험해도 개인적으로 감당하곤 한다”고 했다. 공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차별금지법을 논할 때 ‘동성애 찬성 여부’를 묻는 혐오적인 문답이 반복될 때 차별이 거듭될 때마다 성소수자가 과연 시민으로 인정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 모인 이들은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인권위가 지난해 4월 1003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차별 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67.2%였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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