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관찰] 불황때 중고가 안 팔리는 이유는
빈티지·한정판 등 가치 소비
돈 아끼기 위한 수단은 옛말
작년 하반기부터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자들 사이에서 과거와는 좀 달라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예전엔 물건을 올려놓으면 금방금방 나가곤 했지만 이제는 문의도 적고 팔리기까지 더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이 조금 뜻밖일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자산시장의 상승세가 꺾이고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런 경기 하강기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돈을 아끼기 위해 중고로 물품을 사지 않을까?
이러한 논리로 경기 하강기에 중고거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용자들 사이의 반응은 정반대인 것이다. 실제로 각 중고거래 플랫폼들의 주간 활성 이용자 수 추이는 작년부터 점진적으로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히 체감뿐만 아니라 중고거래를 이용하는 사람 자체가 전보다 줄었다는 의미다. 대체 이유가 뭘까? 이는 2010년대 들어 중고거래의 양상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떠올릴 만한 중고거래의 이미지는 안 쓰는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사 가는 것이다. 즉, 아껴쓰고 나눠쓰는 아나바다식 거래에 가깝다. 물론 과거에는 이러한 중고거래가 다수였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중고바자회를 열고 생활잡지를 보고 누군가 싸게 내놓은 물건을 사러 가는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풍경은 2000년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이어졌다. 그래서 중고거래는 무수히 쏟아지는 쓸모없는 물건의 더미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상품을 찾는 보물찾기에 가까웠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이러한 중고거래의 트렌드가 변하게 된다. 이는 이때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가치소비의 흐름 때문이다. 이전까진 무엇이든 새것이 선호되었다. 사람들은 새것이 아닌 것을 낮게 평가했고 새것은 최고의 상품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가치를 중요시하면서 낡은 상품이더라도 그 가치를 따로 평가하기 시작한다. 빈티지 가구와 빈티지 소품에 대한 대중적인 선호가 나타난 것도 바로 이 시점부터다. 전이라면 오래되고 낡았기 때문에 그냥 버려졌을 상품이지만 지금은 보기 드문 스타일을 갖추고 있기에 낡았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또한 사치품과 한정판에 대한 사람들의 소비욕구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상품이 꼭 새것일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트렌드는 20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자산랠리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나 코로나19 기간에 벌어진 자산버블은 이 트렌드를 과열 양상으로 가속화시켜 너도나도 사람들이 상품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고거래는 상품을 저렴하게 사서 돈을 아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소비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중고거래가 급증한 핵심적인 원인이다.
물론 이젠 소비의 열풍이 가라앉고 돈을 아끼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기에 염가에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중고거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아끼려면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보다 아예 구매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방식이다. 사람들이 가진 경기에 대한 전망이 어두울수록 소비는 줄어들 것이고 이는 중고거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코로나 때 중고로 사들인 물건들이 이제 필요 없다고 느껴졌다면 이는 남들 또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중고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체감적으로 느끼는 변화의 원인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소비자들의 소비는 경기순환적이다. 경기가 좋으면 소비를 늘리고 경기가 나쁘면 소비를 줄인다. 중고거래 또한 소비다. 경기가 나쁘면 줄어드는 법이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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