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피해자의 기준
모 바이오 주식의 '피해자 백서'라는 문건을 밤새 읽은 적이 있다. 천문학적 손실을 본 주주들이 만들었다는 PDF 파일이었는데, 하나하나 억장이 무너지는 사연이었다. 수백 페이지를 꾸역꾸역 다 읽은 것은 몇 년 전 바이오에 대해 취재할 때 그 회사 기사를 몇 번이나 썼기 때문이었다. 의료제약 바이오 업계에 두루 '평판 조회'를 했지만 누구도 이런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이후 거짓말과 경영 실패로 날아간 시가총액만 수조 원, 거대한 사기극에 일조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최근 주가조작으로 시끄러운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하한가 종목 게시판에도 비슷한 사연이 줄줄이 올라왔다. 불과 나흘 새 주가가 5분의 1 토막이 됐는데, 그저께 하한가에 들어간 사람들은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이라며 웃고 있었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투자자로 지목된 연예인의 해명 인터뷰를 봤다. 그는 "나도 사기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설전을 벌이고 있다. '30억원이 한 달 만에 57억원이 됐을 때 사기인 줄 몰랐느냐' '1조원 달성 파티에 참석했다는데 공범 아니냐'는 댓글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향후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정말 모르고 당했다면 그에게는 몇 배 더 억울한 상황일 것이다.
같은 날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피해자의 기준'을 내걸었다. 6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데, 모호한 규정이 많아 대혼란이 예상된다. 무작정 구제할 수 없는 정부 입장도 이해되지만, 사기당했음을 입증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가슴은 전전긍긍하며 얼마나 타들어갈 것인가.
그사이 사기범들은 호의호식하며 잘산다. 이게 다 사기죄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기 때문이다. 주가를 조작해도 2명 중 1명은 법원조차 가지 않고, 재판을 받아도 10명 중 4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남의 돈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을 빼돌려도 1~2년 살고 나오면 그만이다. 피해자 기준을 만들 때가 아니라 사기범들을 때려잡고 중형에 처해야 할 때다. '사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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