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오토바이' 사달라 조른다면… [내 아이 상담법]
허용할 수 없는 요구하는 자녀
어떻게 의견 조율해야 할까
요구 뒤 숨은 진짜 마음 읽어야
자녀와 의견을 조율하는 건 어려운 과정이다. 특히 부모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걸 자녀가 요구한다면 갈등의 골은 깊어지기 쉽다. 예를 들면, 성형, 오토바이 등등이다. 여기 한가지 사례가 있다. 고등학생 '민호(가명)'는 오토바이를 사주지 않는 부모와 갈등을 빚다 결국 가출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 오토바이 사주세요." 자녀가 이런 부탁을 해온다면 어떨까. "그래"라며 흔쾌히 오토바이를 사줄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듯하다. 경제적인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행여 사고라도 날까 걱정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거다. 이처럼 자녀를 키우다 보면 종종 부모로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받는 순간이 있다. 필자가 얼마 전 만난 고등학생 민호(가명)의 어머니도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
민호와 부모님은 오토바이를 두고 대치 중이었다. "오토바이를 사 달라"는 민호에게 부모님은 "위험하니 절대로 사줄 수 없다"며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급기야 민호는 부모님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집을 나갔다.
민호의 아버지는 "돈이 궁해지면 돌아올 것"이라면서 강한 태도를 취했지만 민호 어머니의 마음은 달랐다. 행여 집 밖에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용돈이 떨어져 도둑질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실 청소년이 오토바이를 타는 게 불법은 아니다. 125cc 미만의 이륜차 운전면허는 만 16세 이상이면 취득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상담을 하다 보면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다. 특히 코로나19로 배달 수요가 증가하면서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이 부쩍 늘어났다는 측면도 있다.
물론 민호의 사례에서 보듯 모든 청소년이 돈을 벌기 위해 오토바이를 사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멋져 보여서' '속도감을 즐기고 싶어서'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어서' 오토바이를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많다. 이유가 뭐가 됐든 부모 입장에선 오토바이의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길을 가다 보면 위협적으로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오토바이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지난해 9월엔 부산에서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던 청소년 다섯명이 서로 부딪혀 중경상을 입었다. 10월에는 배달 오토바이를 훔쳐 무면허로 운전한 10대 청소년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로선 자녀에게 오토바이를 쉽사리 사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민호의 부모님이 한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민호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호의 입장은 이랬다. "부모님이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 그래서 때때로 숨이 막힌다. 오토바이를 타면 무조건 사고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위 친구들은 주말에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가고, 배달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단 한건도 사고가 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부모님이 우려하는 것처럼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거나, 헬멧을 쓰지 않는 아이가 아니다. 부모님이 나를 못 믿는 것 같아 화가 난다."
민호가 가출을 할 만큼 속이 상했던 건 '부모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데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부모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 자녀에게 오토바이를 사주고 싶지 않은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 자체의 위험성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우려들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안 좋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행여 범죄에 연루되는 건 아닐까".
필자가 짐작건대 민호의 부모님은 그동안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라' 이런 암묵적인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해왔던 듯하다. 그런 부모님의 태도가 민호에겐 '우리 부모님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구나'라는 메시지로 전달됐을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자녀에게 오토바이를 사주느냐 마느냐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 신념 등에 따라 구입 여부를 선택할 것이다. 오토바이뿐만이 아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부모와 자녀 간 갈등 요인이 되는 '화장' '성형수술'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런 것들을 허용할 수 없다는 부모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자녀에게 권위 있게 전달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너를 존중하고 믿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세대 차이가 나는 자녀를 이해하는 것부터 난관일 수 있다. 하지만 평소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검토해 본다면 갈등에 부닥쳤을 때도 지혜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오토바이를 사주느냐, 성형수술을 용인하느냐 등의 문제는 어쩌면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