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팬데믹이나 급격한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적 위기는 과학기술의 국제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날로 첨예해지는 기술패권 경쟁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나라도 미래 전략기술을 모두 가질 순 없다. 매력적인 협력 파트너가 되기 위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혼자 서기 위해 뭉치는 '코피티션(coopetition)'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제협력은 갈 길이 멀다.
작년 발표된 DHL 세계 연결지수에서 한국 과학기술 협력 순위는 43위에 불과하며 국가 R&D 중 국제협력 과제의 비중은 2021년에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지난해 2030년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국제협력 논문 비중 확대를 목표로 꼽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때 우리에게 과학기술 국제협력이란 선진국 기술의 벤치마킹 수단에 불과했던 때가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미래를 고민하던 2000년대엔 미국에서 주목받던 스핀트로닉스 기술을 우리 연구원들이 배워오기도 했다. 한창 성과가 나오고 있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젠 해외에서 먼저 공동연구를 제안할 만큼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미 국립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와 시작된 공동연구가 벌써 5년째에 접어들고 있고, 작년에도 미래 전자소자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고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와 함께 공동연구센터를 개소했다.
이처럼 과거와는 달리 높아진 위상에 맞춰 우리는 어떤 협력 전략을 추구해야 할까.
우선 해외 거점 마련을 통해 세계적인 혁신 클러스터에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존, 인텔, 구글 등 거대 기업과 기술 협력이 용이한 런던 테크시티, 글로벌 제약사 100여 개사와 대형 병원이 밀집해 있는 보스턴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등이 대표적 예다. 세계의 기술이 모여드는 생태계 안에 마련될 한국의 거점은 21세기판 신라방이 되어줄 것이다.
안으로는 제로섬이 아닌 포지티브섬(positive sum)이 가능한 과학기술 국제협력의 구심점으로 혁신생태계를 바꿔 나가야 한다. 미·중 양강을 위시한 주요국이 기술패권 경쟁에서 폐쇄적인 보호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좋은 기회이다. 우리와 상호보완적 기술을 갖춘 해외 유수 연구기관의 국내 유치와 공동연구를 꾀하고, 이를 통한 혁신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발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
첨단 기술 확보를 위한 세계적인 기업과 대학들의 이합집산은 오늘도 숨 가쁘게 진행 중이다. 우리도 미온적 자세를 버리고 세계 무대에서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1988년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전 세계에 알렸던 88올림픽의 주제곡, '손에 손 잡고'의 노랫말처럼 이제 손에 손을 잡고 벽을 넘어설 때다.
[윤석진 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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