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주름잡는 세상 ‘소수 언어’가 사는 법[책과 삶]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줄리 세디비 지음·김혜림 옮김 | 지와 사랑 | 344쪽 | 1만9000원
책은 저자의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언어심리학자인 저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까지 그곳에 살다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체코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까지 겪은 그녀에게 주류 언어는 영어였다. 비주류 언어였던 체코어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고향 땅에서 숨을 거둔 후 그제야 비로소 저자는 자신을 형성한 문화 전체에서 닻이 풀린 느낌을 받는다. 허공에 뜬 기분이었다는 저자는 체코를 찾고, 그곳에서 잊었다고 생각한 체코어를 다시 배운다. 그리고 모국어를 다시 배우는 사람들, 모국어를 잃어버리는 메커니즘과 언어간 권력관계를 탐구하고, 수없이 스러져간 소수 민족들의 ‘약한 언어’를 들여다본다.
“성공은 영어로 말한다.”
이 책은 영어가 주류 언어가 된 세상의 잔인한 역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영어로 말해야 편했고, 인정받았고, 영어를 말하지 못하는 부모가 부끄러웠던 어린 시절 경험을 꺼내며 “언어 다양성의 가장 큰 위협은 아마도 영어와 같은 언어학적 거인이 지닌 단순한 유용성이 아니라, 그런 언어를 선망하는 정서일 것”이라고 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성공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동력이 영어권 문화와 본질적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면 얻는 이익이 많다는 인식이 팽배한 한국 사회가 어른거리는 대목이다.
저자는 언어의 심리적인 부분도 차근차근 설명한다. 체코어를 다시 배우면서 느낀 감정을 전하며 어떤 언어를 ‘잊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잊었다고 믿었던 언어의 많은 부분이 사실 잊힌 게 아니었고, 많은 부분이 단지 다른 언어들의 먼지와 파편 밑에 오래 묻혀 있었을 뿐이었다.”
언어에 무의식의 감정이 덧입혀질 수 있다는 심리학적 기제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예를 들어 나치 시기에 독일에 거주한 유대인을 분석한 결과, 안전한 나라로 도피하기 전 독일에서 더 오래 산 사람들이 더 짧게 산 사람들보다 독일어를 더 많이 떨쳐 내고 잃어버렸다고 한다. 나치의 탄압과 폭력 행위를 직접 경험하고 오래 노출된 사람의 무의식일수록 독일어에 대한 부정적 감각이 덧입혀졌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언어는 대략 7100여개. 에야크어, 블랙풋어, 미치프어 등 대부분 힘의 권력에서 밀려난 언어들이 사라져간다. 그러나 각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고유의 정서와 역사, 문화, 통념이 깃들어 있다. 저자는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사회를 ‘다성음악’에 비유하며 다성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언어가 기억되고 사라지는 방식, 여러 언어와 공존하는 방법 등 언어의 다양한 면을 에세이처럼 일상의 언어로 풀어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