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게 봤던 토론토 운전…잇단 함정에 ‘비싼 수험료’를 치러야 했다[다른 삶]
토론토에 살러 오기 전에 서울에서 13년 가까이 자동차 운전을 했었다. 서울처럼 복잡한 도시에서 10년 넘게 ‘무사고’였다면 뉴욕 맨해튼 운전도 그리 두려울 것이 없다. 인구가 서울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토론토는 도로 사정이 대단히 ‘널널’해보였다. 낯설기는 했으나 운전을 하기에는 편한 도시였다.
도로 규칙이나 운전 문화도 서울보다 여러모로 자유로웠다. 캐나다에 처음 왔던 날, 공항에서 나를 태워준 내 선배는 “토론토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금지 표지판만 없으면 중앙선에서 유턴을 해도 되고 좌회전을 해도 된다. 마찬가지로 사거리 비보호 좌회전도 가능하다. 토론토라는 도시는 운전자에게 자율성을 많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일종의 자유로움을 맛보았었다. 이민 초기, 모든 면에서 바짝 긴장한 채 캐나다 생활을 시작한 것과는 반대로, 운전에 대해서만큼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토론토에서의 운전은 그만큼 편하고 쉬워보였다.
방심은 늘 화를 부르는 법이다. 나는 토론토에서 살면서 방심의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렀다. 캐나다에 살러 와서 나는 가장 먼저 월세 아파트를 구했고, 그다음으로 자동차를 구입했다. 처음부터 자신만만하게 자동차를 몰았던 나는 차를 구입한 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두 가지 봉변을 당했다.
첫 번째는 병원에서 한국어 통역자에게 당한 일이다. 병원에 갔더니 한국어 통역자가 나와 있었다. 병원이 신참 이민자를 배려해 불러준 사람이었다. 볼 일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함께 온 통역자가 내 차를 보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다.
“요즘 이민 오는 한국 사람들은 이곳에 오자마자 모두들 새 차를 사는데요, 건방지고 문제가 많아 보여요.”
그리고 자동차와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물가에서 겨우 물장구만 찰방찰방 쳐보고 캐나다를 다 알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캐나다가 얼마나 깊은 나라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캐나다살이 30년이 넘었고 나이가 나보다 20년은 더 많아 보인다고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무례한 말이었다. 나는 놀라서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돈을 아껴가며 캐나다에 적응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즐기기부터 한다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그이의 눈에는 이민 오자마자 새 차를 구입하는 것이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30년 전에 비해 한국의 생활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으며, 한국에 ‘마이카 시대’가 온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한국에서도 새 차 몰고 다녔어요” 정도로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의 깊은 문화 운운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그냥 무시했다. 자동차와 관련해 창졸간에 당한 1차 봉변이었다.
서울에서 자동차 몰고 다닐 때보다 상대적으로 널널했던 도로 사정
시간대 안 가리고 경찰 ‘불쑥’…곳곳 암행 단속에 이민 초기 ‘마음고생’
수많은 딱지 떼이고 얻은 교훈 ‘경험하지 않고 자신하면 봉변 당한다’
2차 봉변은 바로 그다음 날에 당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후진 주차를 하다가 시멘트 사각기둥의 모서리를 세게 받아버렸다. 뒤를 안 보고 성급하게 후진을 한 탓이다. 새 차의 왼쪽 범퍼가 푹 들어갔다. 며칠 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속이 상했다. “사람 안 다쳤으면 괜찮아. 액땜했다고 쳐”라는 어느 선배의 말을 듣고 겨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자동차 관련 봉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어느 토요일 아침, 공원에 나갔다가 교통 위반 티켓을 한꺼번에 3장이나 받았다. 공원 안쪽에 있는 곡선 도로를 돌아갔더니 속도 측정기를 손에 든 경찰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말했다.
“제한속도 시속 20㎞ 도로에서 38㎞로 운행했다. 과속 티켓을 발부한다.”
운전면허증뿐만 아니라 자동차등록증과 보험증서도 보여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증서들을 자동차에 넣고 다녀야 하는 줄 몰랐다. ‘증서 미소지’ 티켓 2장 추가.
내 표정을 보더니 경찰은 퍽 안 돼 보였던지 티켓 뒷면에 적힌 여러 대응 방법을 손으로 짚어가며 알려주었다. “법정에 가서 재판을 신청하면 된다”고도 했다. “큰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왜 법정에 가느냐?”고 나는 반문했다. 경찰은 답답했던지 손으로 티켓 찢는 시늉을 하면서 “재판을 신청하면 2장은 그냥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서울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이후 교통 위반 티켓을 받으면 반드시 재판을 신청했다. 재판이 열리기 직전 검사(혹은 검사 보조인)가 ‘딜’을 제안해온다. 가령 이런 식이다.
“너는 15㎞ 이상을 초과했으니 벌금 200달러에 벌점 3점이다. 네가 잘못을 인정하면 벌금은 100달러, 벌점은 0으로 해주겠다.”
이런 제안을 받고도 “나는 위반한 적 없고 경찰이 실수한 거야”라고 버티며 판사 앞에서 경찰과 다퉈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딱지를 떼인 운전자는 벌점이 쌓일까 봐 무서워(9점이면 면허 정지) 재판을 신청한다. 신청 후 6개월쯤 뒤에 열리는 재판에 티켓을 발부한 경찰이 출석하지 않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경찰이 안 나오면 티켓 발부는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행운을 누렸다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법원을 찾아가서 재판을 신청하는 것도, 재판정에 가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을 모두 대리인(패러리걸·Paralegal)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벌금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방심하는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원에서 티켓 3장을 한꺼번에 발부받은 이후에도 티켓을 줄줄이 받았다. 당시에 받은 티켓 숫자는 내가 한국에서 12년 넘게 운전하면서 받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속도광도 아니고 난폭 운전에 맛을 들인 것도 아닌 내가 왜 자꾸 티켓을 받는지 나도 궁금할 지경이었다. 방심 운전 외에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었다. “액땜했다고 치자”는 말도 이제는 지겨웠다.
이민 초기에 이런 티켓을 받은 적도 있다. 큰 도로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 쪽으로 우회전을 했는데,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더니 지금 이 시각에 이 도로로 들어오면 위반이라고 했다. 항변을 했다.
“무슨 소리냐. 나는 이 길을 거의 매일 드나든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바로 저 건물이다.”
경찰은 손가락으로 표지판을 가리켰다. 학교 근처의 이면 도로 초입에 등하교 시간(월~금요일 오전 7~9시, 오후 4~6시) 진입 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평소에 내가 진입하는 쪽의 반대편에 있었다. “초기 이민자라서 몰랐다”는 내 말에 경찰은 참 얄밉게도 말했다. “그걸 왜 몰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지판인데?”
경찰은 주말이나 공휴일 아침 이른 시간에 단속을 많이 한다. 평일에 비해 운전자들이 긴장을 다소 늦추는 시간대이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다가 티켓을 받았다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토론토의 단속은 예전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거의 모두가 ‘함정 단속’이다. 새벽 3시에 골목길에서 멈춤 사인 위반을 단속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운전자들이 본능적으로 속도를 낼 만한 지점들은 ‘포인트’라고 불린다. 단속 경찰은 전봇대 같은 지형지물 뒤에 숨어 있다가 속도 측정기를 내보이며 과속 차량 앞에 갑자기 등장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포인트’는 늘 있는 곳에만 있다는 사실. 따라서 그런 사실을 모르는 초기 이민자들이 거기에 많이 걸려든다. 도로에서 ‘암행 운전’하며 적발하는 경찰 차량도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그런 경찰차는 일반 승용차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도색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운전자가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티켓을 골고루 다 받은 것 같다. 그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재미있는 경험도 더러 했다.
어느 날 오후, 도심으로 가는 4차선 도로에서 운전하고 있는데 곡선 도로를 돌자마자 경찰이 나타나 차를 세웠다. 오후 시간에 그 도로를 운행한 것은 처음이라 그곳이 ‘포인트’인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경찰을 대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경찰이 운전석 옆으로 다가오기 전부터 ‘내가 잘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문을 내리고 기다렸다. 경찰은 “여기는 시속 40㎞ 구간인데 너는 68㎞로 운행했다”고 했다. 경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가 요구하기도 전에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 보험증서를 익숙하게 꺼내 경찰에게 제시했다. 내가 지은 죄를 잘 안다는 표시였다.
경찰은 경찰차로 가서 티켓을 한참 동안 만들더니 내게 전해주면서 말했다.
“이 정도 속도위반이면 벌금 300달러에 벌점 3점인데, 안전벨트 미착용 티켓으로 끊었다. 앞으로는 조심해라.”
벌금은 20달러쯤 되고, 벌점도 없고, 자동차 보험료에 영향도 주지 않는 가장 가벼운 티켓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는 단속 경찰한테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절대 항변하지 않는다. 실수를 바로 인정하고 행운을 기대하는 편이 훨씬 실리적이라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교통 딱지 받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민 초기 통역자가 내게 했던 무례한 말의 속뜻을 비로소 이해할 것 같았다.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그의 말은 자동차와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자동차에 적용한다 해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예의 바르게 잘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서울에서의 운전 경험이 풍부하고 토론토의 도로가 ‘널널’해보인다고 해서 내가 토론토 운전 문화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방심하고 운전했다가 이민 초기 몇 년 동안 비싼 수험료를 치르고 마음고생도 숱하게 했다.
그래서 내가 얻은 교훈은 이것이다. 어느 나라의 무슨 문화든 그 내용은 크고 깊은 법이다. 그 문화를 경험해보지 않고 잘 안다고 자신했다가는 봉변당한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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