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 다가가려 쉼표도 공들여 번역"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일주일만에 4쇄 찍어 깜짝놀라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마음 속
얼어붙은 바다 깨는 도끼여야'
질문하는 카프카 문장 좋아해
프란츠 카프카. 그의 이름은 문학세계의 영원한 주문(呪文)과 같다. 꺼지지 않는 불꽃, 심연으로 가는 열쇠. 카프카의 저 이름이 서점가에서 되살아났다. 그의 신작 단편선집 '돌연한 출발'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 전체 베스트셀러 3위까지 올랐고(27일 교보문고 기준), 무수한 독자의 '돌연한' 반응을 마주한 민음사는 판매 개시 일주일 만에 4쇄 1만5000부를 찍었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카프카의 문장에 선한 등불을 비춰 독자를 인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이 책의 역자인 전영애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사진)다. 독일에 체류 중인 그를 지난 27일 서면으로 만났다.
"카프카의 글을 읽는 것으로 나의 독문학 공부가 시작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전 교수와 카프카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원 석사 시절, 동기생이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가 대체 뭔데, 대체 누군데' 하는 물음으로 카프카의 첫 장을 폈다. "하지만 작품을 읽지 않고, 아니 읽지 못하고, 카프카 모노그래프를 읽었어요. 클라우스 바겐바하가 쓴 작은 책이었습니다."
바겐바하의 글엔 검은색 잉크를, 카프카의 글엔 초록색 잉크를 묻혀 그는 원고지를 메꿔 나갔다. 이 책은 훗날 홍성사의 '카프카'로 출간됐고, 한길사의 '프라하의 이방인 카프카'로 재출간됐다.
"작품 번역에 앞서 연구서를 먼저 낸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게 있었어요. 카프카야말로 작품을 꼼꼼히 읽어 다가가야 하는 작가입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그냥 쓰이지 않았고, 쉼표, 마침표 같은 부호 하나 쉽게 찍히지 않았거든요. 이번 책은 그래서 오래 두고 꼼꼼히 짧은 글들을 번역했습니다. 책이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는데 고마운 누군가가 책이 되도록 도와주셨어요."
책 '돌연한 출발'은 손바닥만 한 책의 한 페이지 소설 '작은 우화'부터 '법(法) 앞에서' '황제의 전갈' '튀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수십 편이 단권으로 꿰매졌다.
그러면서도 378쪽짜리 책에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를 다룬 '변신', 원숭이 페터가 자신이 문명화된 과정을 학계에 보고하는 '학술원에의 보고' 등 대중에게도 익숙한 소설을 담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카프카를 다룬 전 교수의 시편, 그리고 이 책의 편집자 이정화의 글은 전방위적인 고백록에 가깝다.
"1㎜라도 원문에 더 밀착시키고 싶었습니다. 긴 시간이 가며 자꾸자꾸 번역을 다듬었고 이번엔 아주 많이 다듬었습니다."
영원히 기억할 카프카의 문장으로, 전 교수는 '한 권의 책은 우리들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를 꼽았다. "책 띠지에 뽑혀 나와 있는, 많이 인용되는 문구이지요. 쉽고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 사랑받는 시대에 한 권의 책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카프카는 명을 걸고 바로 그런 글을 썼기에 카프카입니다."
카프카가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건,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가운 일만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전 교수는 '착잡하다. 혹독한 삶의 조건이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라고 적었다. "카프카의 글 같은 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만큼 카프카의 글은 시대의 문제가 적확하게 포착돼 있습니다."
카프카가 가지려 애썼던 '조망'은, 젊은 날의 전 교수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것 같던' 시절 자신의 모든 희구를 요약해주는 단어였다고 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전 교수가 카프카를 만나면 무엇을 질문할까. "아마도 말이 없겠지만, 굳이 꼭 해야 한다면 낮은 소리로 '괜찮아요(Geht's)?'라고 물어볼 것 같아요. 그만큼 긴 세월을 함께했으니까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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