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 다가가려 쉼표도 공들여 번역"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4. 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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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집 '돌연한 출발' 번역한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일주일만에 4쇄 찍어 깜짝놀라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마음 속
얼어붙은 바다 깨는 도끼여야'
질문하는 카프카 문장 좋아해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돌연한 출발'의 번역가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프란츠 카프카. 그의 이름은 문학세계의 영원한 주문(呪文)과 같다. 꺼지지 않는 불꽃, 심연으로 가는 열쇠. 카프카의 저 이름이 서점가에서 되살아났다. 그의 신작 단편선집 '돌연한 출발'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 전체 베스트셀러 3위까지 올랐고(27일 교보문고 기준), 무수한 독자의 '돌연한' 반응을 마주한 민음사는 판매 개시 일주일 만에 4쇄 1만5000부를 찍었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카프카의 문장에 선한 등불을 비춰 독자를 인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이 책의 역자인 전영애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사진)다. 독일에 체류 중인 그를 지난 27일 서면으로 만났다.

"카프카의 글을 읽는 것으로 나의 독문학 공부가 시작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전 교수와 카프카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원 석사 시절, 동기생이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가 대체 뭔데, 대체 누군데' 하는 물음으로 카프카의 첫 장을 폈다. "하지만 작품을 읽지 않고, 아니 읽지 못하고, 카프카 모노그래프를 읽었어요. 클라우스 바겐바하가 쓴 작은 책이었습니다."

바겐바하의 글엔 검은색 잉크를, 카프카의 글엔 초록색 잉크를 묻혀 그는 원고지를 메꿔 나갔다. 이 책은 훗날 홍성사의 '카프카'로 출간됐고, 한길사의 '프라하의 이방인 카프카'로 재출간됐다.

"작품 번역에 앞서 연구서를 먼저 낸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게 있었어요. 카프카야말로 작품을 꼼꼼히 읽어 다가가야 하는 작가입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그냥 쓰이지 않았고, 쉼표, 마침표 같은 부호 하나 쉽게 찍히지 않았거든요. 이번 책은 그래서 오래 두고 꼼꼼히 짧은 글들을 번역했습니다. 책이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는데 고마운 누군가가 책이 되도록 도와주셨어요."

책 '돌연한 출발'은 손바닥만 한 책의 한 페이지 소설 '작은 우화'부터 '법(法) 앞에서' '황제의 전갈' '튀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수십 편이 단권으로 꿰매졌다.

그러면서도 378쪽짜리 책에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를 다룬 '변신', 원숭이 페터가 자신이 문명화된 과정을 학계에 보고하는 '학술원에의 보고' 등 대중에게도 익숙한 소설을 담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카프카를 다룬 전 교수의 시편, 그리고 이 책의 편집자 이정화의 글은 전방위적인 고백록에 가깝다.

"1㎜라도 원문에 더 밀착시키고 싶었습니다. 긴 시간이 가며 자꾸자꾸 번역을 다듬었고 이번엔 아주 많이 다듬었습니다."

영원히 기억할 카프카의 문장으로, 전 교수는 '한 권의 책은 우리들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를 꼽았다. "책 띠지에 뽑혀 나와 있는, 많이 인용되는 문구이지요. 쉽고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 사랑받는 시대에 한 권의 책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카프카는 명을 걸고 바로 그런 글을 썼기에 카프카입니다."

카프카가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건,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가운 일만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전 교수는 '착잡하다. 혹독한 삶의 조건이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라고 적었다. "카프카의 글 같은 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만큼 카프카의 글은 시대의 문제가 적확하게 포착돼 있습니다."

카프카가 가지려 애썼던 '조망'은, 젊은 날의 전 교수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것 같던' 시절 자신의 모든 희구를 요약해주는 단어였다고 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전 교수가 카프카를 만나면 무엇을 질문할까. "아마도 말이 없겠지만, 굳이 꼭 해야 한다면 낮은 소리로 '괜찮아요(Geht's)?'라고 물어볼 것 같아요. 그만큼 긴 세월을 함께했으니까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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