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어느 무리에 속하느냐가 인간의 인식을 지배한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펴낸 美과학 칼럼니스트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해진다."
미국의 과학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베레비가 한 말이다.
베레비는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이라는 책에서 18세기 말 인디언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찰스 존스턴의 사례를 상기시킨다.
전형적인 백인이었던 존스턴은 흑인 한 명과 함께 쇼니 인디언에게 포로로 붙잡힌다. 그때를 존스턴은 이렇게 회상한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가까이하지도 않았을 검둥이가 내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고, 내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공식적인 인종차별이 엄존하던 시대, '백인과 흑인'이라는 무리 짓기에 익숙했던 존스턴에게 흑인은 같은 사람이 아닌 다른 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포로'라는 새로운 무리 짓기에서 같은 무리에 속하자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베레비는 인류학에서 신경과학까지 여러 분야 연구를 근거로 이 같은 '부족적(Tribal) 감각'이 인간 본성이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부족적 감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느 부족에 속했는지 생각해보자. 좌파와 우파, 늙은이와 젊은이, 기독교도와 불교도, 영남과 호남, 강남과 강북, 축구팬과 야구팬….
이 구분법에서 어느 무리에 속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은 달라진다.
베레비는 부족적 감각이 만들어주는 정체성은 대부분 거짓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200년 전만 해도 스페인 사람은 엄격하고, 터키 사람은 품위 있고, 그리스 사람은 경박하다는 편견이 통용됐다. 얼마나 비과학이고 반지성인가. 지금 이 말을 기억하거나 인정하는 유럽 사람은 거의 없다.
베레비는 "당신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당신이 속한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자기가 속한 무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지식인이나 교양인들은 바로 '무리'를 뛰어넘은 사람들이다. 무리의 집단의식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판단을 실천한 사람들이 결국 인류의 스승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인간은 본능처럼 무리를 짓고 산다. 그러나 그 무리는 영원하지 않다. 가난뱅이였던 내가 갑자기 부자가 될 수 있듯이 인간은 늘 여러 무리를 옮겨 다닌다.
무리를 옮길 때마다 인식이 바뀐다면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동물인가. 결국 성숙하고 훌륭한 인간은 무리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모두가 무리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초연하게 보편적 진리를 따르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 아닐까.
정파를 진리라고 착각하면서 양쪽으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베레비가 생각났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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