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로 스며든 야외 예술을 품은 디자인 가구, 경계를 해체하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4. 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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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밀라노 가구박람회
Salone del Mobile. Milano 2023
밀라노디자인위크 장외전시 중 팔라초 이심바르디에 마련된 로에베 의자 전시.

세계 최대 규모 디자인 축제 밀라노디자인위크가 화려한 색과 강력한 빛을 품고 돌아왔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재택근무는 미래 라이프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야외에 둘 법한 가구가 실내로 들어왔다. 사무실 가구에도 알록달록 밝은 빛깔과 패브릭 질감이 많아졌다. 예술품 같은 조명을 넣자 공간이 마법처럼 환해진다. 2023 밀라노디자인위크에서 발견한 트렌드다. 이 행사는 가구뿐만 아니라 조명, 가전, 식기, 건축자재, 인테리어 액세서리 등 공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물건이 전시되는 세계 최대 박람회다. 지난 18~23일 밀라노시 북서쪽 로(Rho) 지역 피에라 밀라노에서 열린 제61회 밀라노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Milano·본전시)에는 전 세계 181개국에서 방문객 30만7418명이 몰렸다. 전년 대비 15% 늘었다.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 조 파스토리가 디자인한 포스터.

본전시 행사장 피에라 밀라노는 실내 면적만 무려 34만5000㎡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4개를 합친 규모(3만6007㎡)의 10배에 육박할 정도의 공간에 2000개 이상 브랜드가 참여했다. 밀라노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외 전시인 제33회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도 350여 개 행사로 열기를 더했다.

조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의 미니멀한 조명. 밀라노가구박람회 Francesco Merlini

격년마다 열리는 특별전에는 조명에 초점을 맞춘 '유로 루체(Euroluce)' 섹션이 마련돼 빛 조절만으로도 색다르게 공간을 창출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특히 자크 헤르초그, 피에르 드모이론 등 세계적 건축가들이 가세해 건축적 구조물처럼 설치되고,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조명이나 가구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장외 전시로는 레이디 가가가 주연한 영화 '하우스오브 구찌'에서 로돌포 구찌의 호화 저택으로 등장한 문화유산 빌라 네키 캄필리오가 돋보였다. 이곳에서 독일 디자이너 악셀 마이젤이 만든 첨단 조명회사 오키오(Occhio)는 정원 옆에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을 차리고 주요 센서등 시스템을 선보였다. 광활한 우주 공간이 음악과 함께 펼쳐지면 마치 마법이 작동하듯 조명등이 올라갔다 내려가며 로봇처럼 움직였다. 공간 전체가 예술전시장처럼 신비롭게 변신했다.

올해는 럭셔리 패션 업체들이 장외에서 홈데코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현장 인기몰이에 성공해 기존 가구 업체들의 기세를 누르는 형국이었다. 루이비통은 팔라초 세르벨로니에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번엔 마르설 반더스, 아틀리에 비아게티, 아틀리에 오이, 로 에지스 등 스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오브제 같은 가구들을 소개했다. 디올도 스타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르크와 손잡고 팔라초 치테리오에서 알루미늄과 패브릭, 형광 주황색 등 다양한 소재와 색깔의 '무슈 디올 암체어' 등을 선보였다. 국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챕터원을 운영하는 구병준 피피에스 대표는 "명품 패션 업체들이 리빙을 삼켜 더 큰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등 공간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 잡은 느낌"이라며 "소비자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소재로 만든 안토니오 치테리오의 라운지체어. Knoll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차영희 아틀리에멘디니 디렉터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가구와 인테리어가 점점 더 럭셔리화되는 경향성을 보인다"며 "카시나처럼 과거의 미니멀한 단색 가구에 파스텔 색이나 원색을 활용해 경쾌한 분위기를 더한 업체들도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재활용·친환경 혁신 소재를 대거 채택하는 추세는 여전히 강했다. 사무용 가구에도 목재 사용이 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패브릭 소재도 많아졌다. 가구의 프레임을 살리되 커버만 교체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촉각적인 흥미를 자극하는 장점이 부각된 때문이다. 가구업체 에드라(EDRA)는 보석처럼 빛나는 테이블과 의자로 화제를 모았고, 폭신한 소파도 인기였다. 수년간 밀라노가구박람회를 참관한 디자인 컨설턴트 여미영 스튜디오D3 대표는 "올해는 전반적으로 아웃도어(야외) 가구의 강세가 두드러졌다"고 언급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야외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디자인 언어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다. 그는 "단순히 아웃도어 가구들이 인도어(실내) 제품 이상으로 디자인이 세련되고 고급화되거나 인도어·아웃도어를 병행하는 디자인을 넘어, 실내 공간을 위한 인도어 디자인에서도 야외공간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라탄, 유리 등 자연을 연상시키는 감성 소재와 컬러를 반영해 쾌적함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실내외에서 병용 가능한 모듈형 소파. lapalma

본 전시장에서는 '워크플레이스 3.0' 콘셉트도 제시됐다. 이탈리아 가구 업체 라팔마에서는 'Stay, Meet, Work' 콘셉트로 앉아서 노트북 작업을 하며 편안하게 휴식도 취할 수 있는 실내외 겸용 모듈형 소파 시스템을 선보였다. 젊은 직원이 많은 유망 기술기업에서 선호할 만한 콘셉트였다.

봉쇄 기간 집 안에 식물을 키우는 트렌드가 퍼졌듯 조명이나 가구에서도 변화가 보였다. 꽃병 기능을 겸한 둥근 LED 조명과 나무 같은 식물을 키우는 거대한 토분도 주목됐다.

설치작품 같은 Flos의 조명 . 밀라노가구박람회 Francesco Merlini

아울러 최근 MZ세대 1인 가구 사이에서 집 꾸미기가 화두로 떠오르며 깜찍한 인테리어 상품들에도 인파가 몰렸다. 이탈리아 유명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반노니의 브랜드 '퀴도'는 알록달록한 토끼 스툴 신제품을 내놓았고, 고급 원목가구 업체 리바(RIVA)는 향나무를 통째 써서 강아지 모습을 살린 귀여운 벤치를 선보였다. 전반적으로 직선보다는 곡선과 부드러운 재질이 많았다. 기존 무채색 가구를 화려한 빛깔로 갈아입힌 신제품이 많아지면서 무미건조한 공간에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에 대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규모 면에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평가했다. 구 대표는 "최근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개성 있는 디자이너들 활약이 두드러지기보다는,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스타 디자이너들 명성에 의지하는 측면이 강해졌다"고 평했다.

격년으로 개최되는 조명 전시회 유로루체.

올해도 중동이나 아시아에서 대규모 호텔과 리조트 시장이 열리는 것에 맞춰 취향 저격용 디자인 제품들이 대기 중이고, 비즈니스 상담도 활발한 분위기였다. 특히 중국인이 선호하는 새장 형상 조명이나 대나무 모양 수전도 등장했다. 서양 디자이너들을 기용해 일본풍 젠(동양적 미니멀리즘) 스타일 공간을 구현한 곳도 있었다. 차 디렉터는 "자연을 품은 인테리어가 각광을 받으며 유럽에서 아시아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는 "한국 가구와 공예품이 아시아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긍정적 인상을 심어줬다"며 "이번 밀라노 한국공예전에서는 독특한 물성을 살려 유기적 형태를 구현한 김희찬, 정정훈, 이재하가 공예적 기법이나 산업화 측면에서 발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밀라노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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