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에 "집 가서 죽이면 돼"…강남 납치·살인 '계획 범죄' 증거

정경훈 기자 2023. 4. 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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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제공) (C)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오늘은 가방들고 있어서 안 되겠어."
"어떻게 죽이겠다는 건데요?"
"집에 가서 해버리면 되지."

범행을 앞두고 차량 블랙박스에 녹음된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실행자 황대한(35)과 연지호(29)의 음성이다. 이들이 계획적으로 피해자 최모씨(48)를 납치·살해한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같은 증거를 토대로 서울중앙지검 강남 납치·살인 사건 전담팀(팀장 김수민 부장검사)은 이들과 범행을 공모한 이경우(35)와 유상원(50)·황은희(48) 등 총 7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검·경 조사를 종합하면 코인 업자 최씨가 2020년 10월 유상원과 황은희 부부에게 '퓨리에버코인'에 투자해보라고 말한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황은희는 '프라이빗 계약'으로 1억원을 투자한 뒤, '블록딜' 계약을 위해 투자자들을 모아 30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투자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아 원한을 갖게 됐다. 최씨가 이더리움 1억원 어치에 상응하는 P코인을 나눠주지 않았고, 이더리움 6000개를 자신이 돌려받는 내용의 이면계약을 코인발행사와 맺었다는 게 조사 내용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P코인 가격이 1코인 당 1만354원에서 715원으로 폭락한 것도 원한을 부추겼다. 반면 이더리움은 1코인 당 63만원에서 249만원으로 폭등했다. 검찰 관계자는 "유씨 부부의 손실감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악감정만 남은 유상원 부부에게 이경우가 다가왔다. 그는 코인으로 돈을 벌겠다며 최씨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헬스장 사업이 망한 뒤 남은 자산 8600만원을 전부 코인에 투자했지만 대부분을 잃었다. 최씨 밑에서도 6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

이경우는 최씨에게서 "유상원 부부가 장난을 쳐 코인이 폭락했다"고 듣고 부부가 사는 오피스텔에 난입한다. 이때 처음 본 유상원 부부가 훨씬 큰 수입을 내고 있음을 알게 됐고, 오히려 이들에게 충성 맹세를 한다.

(자료제공=서울경찰청)


이경우는 최씨를 '처리'하면 부부에게 잘 보여 코인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이경우는 대전 지역 폭력조직원 황대한과 함께 부부에게 "최씨를 조용히 제거할 수 있다" "일면식 없는 사람을 쓰면 된다"고 지난해 7~8월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상원 부부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9월 이경우에게 범행 착수금 7000만원을 건넸다. 이경우는 범행 도구 등을 준비했고, 황대한과 연지호에게 실행을 맡겼다. 이들은 최씨에게 10~30억원 어치 코인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상원 부부는 "우리가 피해받은 만큼만 가져갈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나누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대한·연지호는 지난달 29일 사건 직후 이경우를 만나 최씨 휴대전화 4대를 건넸다. 최씨가 숨지기 전, 협박으로 알아낸 가상거래소 계정 암호도 전했다. 이경우와 유상원은 계정에서 코인을 빼내려 시도했지만 접속에 실패했다. 납치되면서 마취제에 취한 최씨는 암호를 제대로 부르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황은희가 휴대전화를 부산 바다로 던져, 최씨에게 얼마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일당은 일면식 없는 황대한·연지호가 범행을 하면 '완전범죄'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다음날 이경우와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뒤이어 유상원 부부, 마취제를 제공한 이경우의 처, 범행 모의 단계에 개입했다가 빠진 이모씨(23) 등도 붙잡혔다.

검찰은 블랙박스 영상 829개를 전수 분석하고 휴대전화 등을 재포렌식하는 등 철저한 보완수사를 했다. 유상원 부부가 각각 수감된 서울구치소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유상원 부부는 구치소 압수수색까지는 예상하지 못하고 메모해둔 '대응 계획'을 고스란히 압수당했다.

메모장에는 '검사가 계속 추궁해도 굴복해서는 안된다'는 내용도 쓰여 있었다. 검찰 측은 "보완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해 빈틈없는 공소유지를 함으로써 죄에 상응하는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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