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기아·LG전자 불황에 더 강했다
기아와 LG전자가 경기 침체라는 위기 국면을 오히려 가속 페달로 삼아 불황의 터널을 빠르게 빠져나오면서 한국 증시의 새로운 '투톱'으로 부상 중이다.
이는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가전, 2차전지(배터리), 금융 등 5대 업종의 국내 톱 주식과 해외 톱 주식(실적 발표 완료 기준)을 비교해본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블룸버그와 금융감독원, 각 사의 내부 자료를 인용했다.
28일까지 발표된 올 1분기 성적표를 뜯어보면 전통의 강자들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주춤한 반면 그 바통을 기아와 LG전자가 넘겨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아와 LG전자는 강력한 '엔진'(영업이익률)으로 각각 테슬라와 월풀을 따돌리며 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까지 주목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격차를 벌리려면 몸집이 가벼워야 하는데 국내 상장사들은 강력한 노조 등 인건비 부담에 '무게'(비용)가 무거운 편이다.
이런 편견을 깨며 1년 새 매출 대비 판매관리비(판관비) 비중을 낮춘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CATL을 맹추격하고 있어 주목된다.
1분기 자동차 업종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기아의 영업이익률이 '형님' 현대차는 물론 '로망' 테슬라까지 따돌린 것이다. 기아는 23조6907억원의 매출에 2조874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이익률 12.1%를 기록했다. 한 대당 매출은 3000만원을 넘어서면서 과거의 '박리다매'식 영업에서 벗어났다.
특히 2조8740억원의 이익을 올릴 동안 판관비로 2조4990억원을 썼다. 비용보다 이익을 더 냈으니 중장기 성장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판관비는 제품을 판매하는 활동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이다. 인건비 비중이 가장 크며 임차료, 감가상각비 등도 포함된다.
현대차는 기아보다 매출과 이익을 더 많이 냈지만 판관비 역시 더 많이 쓰면서 비효율적이었다.
이 국내 차 업종 시가총액 1위 기업은 1분기에 이익 3조5927억원, 판관비 4조1290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기아와 현대차의 매출 대비 판관비 비중은 각각 10.5%, 10.9%로 나왔다.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 중 시총이 가장 큰 테슬라는 1분기에 연속적인 차 가격 인하로 영업이익률 11.4%에 그쳤다. 2022년 1분기 19.2%에 달하던 테슬라 이익률이 1년 새 7.8%포인트 깎일 동안 기아는 3.3%포인트를 높였다.
일각에선 기아가 현대차그룹의 일원으로서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그룹 내 부품회사의 마진을 줄여 자신의 이익률을 높였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모비스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2.9%에 그쳤다. 기아의 고성능 엔진이 빛을 발하려면 '차 무게'를 줄여야 하는 숙제도 남겼다. 매출의 10%를 판관비로 쓰는 구조로는 테슬라(4.6%)에 다시 추월당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1분기 실적은 삼성그룹 대신 'LG의 시대'가 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LG전자는 매출 20조4178억원에 영업이익 1조4974억원으로 고작 6400억원의 이익을 올린 삼성전자에 완승했다. 특히 오랜 가전 맞수인 미국 월풀과의 정면 대결에서도 승리하며 쾌조의 실적을 올렸다.
월풀과 비교 대상 사업부인 LG전자 H&A(가전) 매출은 8조217억원, 이익 1조188억원으로 영업이익률 12.7%다. 월풀은 같은 기간 이익률이 5.7%에 그쳤다. 작년 1분기 영업이익률은 월풀 9.5%, LG전자 가전 8.9%였다.
당시엔 LG전자의 가전 사업부 매출이 드디어 월풀을 제쳤다며 감격했지만 이익률은 낮아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전자 내부 목소리가 있었다.
남은 과제는 판관비 비중을 낮추는 것이다. LG의 매출 대비 판관비 비중은 18%로 올 1분기 월풀(10.5%)보다 높게 나온다.
LG전자 주가는 올 들어 4월 27일까지 24.8% 올랐다. 같은 기간 월풀 주가는 10.2% 하락했다.
이날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LG와 월풀이 각각 15.68배, 34.42배로 오히려 LG전자가 크게 저평가된 상태다. 월풀의 배당수익률은 5.4%로 LG전자(0.7%)보다 배당주로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LG그룹의 주역 LG에너지솔루션(엔솔)도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줬다.
1분기 매출은 1년 새 2배가량 불어난 8조7471억원, 영업이익은 2.4배 증가한 6331억원을 기록했다.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7.2%로 작년 1분기(6%)보다 높아졌다.
LG엔솔의 고속 성장에도 경쟁자 중국 CATL이 초고속 성장세를 보여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로 중국 내 배터리를 독식하는 것은 기본이고, 테슬라를 장기 성장 파트너로 삼은 것이 주효했다.
CATL의 이번 분기 이익률은 11.1%로 LG엔솔보다 높았다. LG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로 판관비 비중은 5%대를 유지했다. 작년 1분기 5.7%에서 올 1분기 5.4%로 낮췄다.
LG엔솔 역시 같은 기간 비용 부담이 10.2%에서 8.7%로 낮아져 몸집을 가볍게 했다. 1등주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LG엔솔 주가는 올 들어 31.6%나 올랐다. 다만 LG엔솔의 PER이 131.7배로 치솟은 것이 투자자에겐 부담이다. CATL은 LG엔솔과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나눠 갖게 된 것이 기정사실이 되면서 올 들어 주가가 6.6% 오르는 데 그쳤다.
반도체 업종에선 1분기 TSMC 영업이익률이 45.5%로 1년 전(45.7%)처럼 유지되자 삼성전자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이익률은 18.2%에서 1%로 급전직하했다. 박리다매 형식의 메모리 사업(삼성)과 '후리소매' 구조의 파운드리(TSMC)의 차이다. 삼성전자는 몸집도 무거운 편이다. 매출 대비 판관비 비중은 올 1분기에 26.8%에 달한다. TSMC(3.2%)는 물론 다른 업종 대표주보다 높았다.
금융업종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투자 심리가 급락했다가 금융 전체 위기가 지나갔다는 얘기가 나오며 최근 회복세를 타고 있다. 이 업종에선 KB금융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비교 대상이다.
KB금융의 1분기 순이익은 1조4976억원으로, 1년 전보다 2.5% 상승했다. BoA는 같은 기간 순익이 15.3% 늘어나 성장성에선 BoA가 압승했다. 배당 투자자 입장에선 KB금융이 낫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배당수익률은 6.2%로, BoA(3.0%)의 2배 이상이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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