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살인’ 부인하던 일당, 구치소 압수수색에 딱 걸렸다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납치·살인 사건 수사가 한달 만에 마무리됐다. 검찰은 가상자산(암호화폐) 갈취를 위한 살해 사건이라고 판단해 범행에 가담한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등 6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목표인 암호화폐 갈취 달성에는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부장 김수민)은 28일 ㄱ씨 납치와 살해를 주도한 이경우(36)씨와 범행에 가담한 연지호(30)·황대한(36)씨를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착수금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된 유상원(51)·황은희(49)씨 부부는 강도살인 및 강도예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밖에 ㄱ씨를 감시한 혐의(강도예비)로 황씨 지인 이아무개(24)씨를, 향정신성의약품을 몰래 빼내 남편 이경우씨에게 전달한 혐의로 허아무개(37)씨를 재판에 넘겼다. 앞서 ㄱ씨는 지난달 29일 밤 11시46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아파트 앞에서 납치된 뒤 살해돼 대전 대청댐 근처 야산에 유기된 채 발견됐다.
■‘살해 계획’으로 번진 암호화폐 갈등
이들의 악연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씨 부부는 그해 10월 ㄱ씨를 통해 ‘퓨리에버코인’에 1억원을 직접 투자했다. 투자자를 모집해 30억원 어치의 ‘이더리움’ 암호화폐를 퓨리에버코인에 투자도 했다. 그러나 ㄱ씨가 수익을 분배해주지 않고 ‘퓨리에버코인’ 가격이 급락하자 ㄱ씨와 갈등이 불거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유씨 부부가 최소한 수십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금액을 특정하긴 어렵다. 이들이 제공한 이더리움 가격까지 계산해야 하는데 계속해 변동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이들이 느꼈을 손실감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ㄱ씨 살해를 주도한 이경우씨는 본래 ㄱ씨 쪽 사람인 것으로 조사됐다. 헬스장 사업에 실패한 이씨는 8천만원 가량의 자산 전부를 퓨리에버코인에 넣었다가 대부분 잃었다. ‘유씨 부부가 시세조종을 해 가격이 폭락했다’는 ㄱ씨 주장에 동조해 유씨 부부 집에 난입한 적도 있다. ㄱ씨 사무실에서 일하던 이씨는 ㄱ씨와 유씨 부부 사이 분쟁내용을 많이 알게 됐고, 더 재력이 있어 보이는 유씨 부부 쪽에 붙으며 관련 자료를 갖다주는 방법으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이들 부부에게 충성 맹세도 하며 ㄱ씨를 조용히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들이 애초부터 ㄱ씨를 살해할 목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보고 있다. 이씨가 유씨 부부에게 2022년 7월께 ‘ㄱ씨를 살해하고 암호화폐를 갈취하자’고 범행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착수금 명목으로 두달 뒤 유씨 부부가 ㄱ씨에게 7천만원을 줬다고도 판단하고 있다. 이씨는 대학친구이자 폭력조직 조직원이었던 황대한씨와 황씨 지인 연지호씨, 이아무개씨를 끌어들였다. 검찰은 이씨와 유씨 부부 가운데 누구 책임이 더 무거운지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법리적으로는 공범이다. 향후 책임에 따라 적절히 구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갈취하려 했으나…사실상 실패
유씨 부부는 계속해 ㄱ씨 살해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의 구치소 압수수색으로 판은 뒤집힌다. 유씨 부부가 서울구치소에 남긴 혐의 관련 쪽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쪽지에는 추후 진술 방향과 수사 대응 방법 등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투자를 했지만 제대로 분배를 받지 못해 원망하는 취지의 내용 등 범행 동기와 연결될 수 있는 내용도 함께 적혀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구치소 수감 이력이 많은 사람이면 압수수색에 대비하는데 따로 경험이 없어 그런지 별도 노트까지 구입해 이런 내용들을 적어놓았다”고 말했다. 민형사 기록 20여건과 휴대전화 재포렌식을 통해서도 이들 범행 동기를 규명했다고 한다.
범행에 성공했을 때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한 내용이 수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이경우씨와 황씨가 ‘서로 5억원씩 가지자’, ‘유씨 부부에게는 피해 액수만큼만 주자’ 등 수익 분배 방향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유씨 부부도 이경우씨에게 자신들이 피해 받은 금액만 주고 나머지는 나눠 가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범행에 착수하기 전,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ㄱ씨와 일면식이 없는 황씨 등이 직접 나서도록 계획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검찰은 이들이 ㄱ씨 암호화폐 갈취에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이씨 등은 ㄱ씨를 납취한 뒤 협박해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 비밀번호를 알아냈지만 로그인에 실패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ㄱ씨가 약물에 중독된 상태여서 비밀번호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씨와 이씨에게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추가 적용됐다. 유씨 부부는 범행 다음날 ㄱ씨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유람선을 탄 뒤 부산 앞바다에 버렸고 해당 휴대전화는 찾지 못했다.
검찰은 이들 7명을 재판에 넘기며 수사가 일단락났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으로 추가 수사할 대상은 없다고 판단한 상태다. 다만 경찰에서 수사 중인 유씨 관련 사기 사건이 검찰로 넘어오면 전담수사팀에 있던 검사가 담당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보완수사 담당 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해 빈틈없는 공소유지를 해 ‘죄에 상응하는 중형’이 선고되게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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