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의 즐거움에 빠져죽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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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와 함께 온몸을 죄던 밧줄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다.
만세! 뜬금없이 선배 목사가 지나간다.
선배님, 죄송하긴 합니다만 고의가 아니었어요.
선배 말소리에 놀라 꿈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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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오프라 윈프리의 짧고 명료한 몇 마디가 사람을 살맛나게 한다. “다른 사람들 사랑하는 것을 당신의 라이프스토리로 삼을 때, 그 스토리에는 마지막 장(章)이 없다. 유산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당신의 빛을 한 사람에게 비춰주면 그 사람이 그 빛을 다른 누구, 또 다른 누구, 또 다른 누구에게 끝없이 비춰준다. 그건 분명 그렇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할 때, 할 일의 목록이 더 없을 때, 화낼 거리가 바닥났을 때, 이메일 상자가 텅 비었을 때, 그때까지 남아있을 것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누구를 사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 누구의 사랑을 받았는지, 이게 전부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한 과정을 통과한다. 차려진 음식을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거다. 이모(姨母)라는 젊은 여자와 짝을 이루었는데 그녀가 한 번만 마셔도 충분한 음료를 두 번 세 번 거듭 마신다. 그러느라고 다른 사람들보다 걸음이 늦어진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속에서 짜증과 조바심이 이는 걸 알아차리고 급히 주문을 왼다. “시간은 본디 없는 것, 없는 시간에 속지 말자, 뭐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있을 뿐!”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며 굼틀거리던 짜증과 조바심이 봄눈 녹듯 사라진다. 와, 진언(眞言)의 힘이 과연 대단하구나, 감탄하다가 꿈에서 나온다.
#잠에서 깨어나 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지켜보는데 뜬금없이 몸한테 숨이 말한다. 숨은 들어오고 나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고 나오는 거다. 네 처지에서 말하면 몸이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고 하는 게 옳지만 내 처지에서 말하면 숨이 몸으로 들어가고 나온다고 하는 게 옳다. 어디, 답해보아라. 몸에서 숨이 났느냐? 숨에서 몸이 났느냐? 몸이 숨의 어미냐? 숨이 몸의 어미냐? 그야 숨이 어머니고 몸은 그 자식이지요. 하지만 자식 없으면 어머니도 없는 것 아닙니까? 옳은 말이다. 천지간에 숨 쉬는 것들이 없는데 숨이 어떻게 있겠느냐? 그건 그렇다만, 말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 그동안 오랜 세월 어미 은덕으로 네가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어미가 네 몸으로 살게 해다오. 이것이 자연이요 상생(相生)의 길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제가 할 일이 아니라 어머님이 하실 일 아닌가요? 이를 말이냐? 하지만 너의 기꺼운 협조 없이는 나 혼자서 털끝만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네가 네 눈을 감는데 내가 어찌 네 눈으로 사물을 보겠느냐? 아하, 그렇군요? 아멘입니다.
#“훔친 것은 없는 것이다.” 이 한마디 말과 밤새 씨름한 느낌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라고 했다. 깨어나서 생각한다. 훔친다는 것은 자기한테 없는 무엇을 그것을 가진 누구한테서 몰래 가져오는 거다. 그러니 그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된다. 묻어두어야 한다. 무엇이 묻혀있으면 그런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나아가 그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한다는 말이다. 존재 곧 소유이면서 행동이다. 문제는 순서다. 존재→소유→행동이 바른 순서다. 이를 거꾸로 돌려 행동→소유→존재로 살려니까 갈수록 뒤죽박죽이다. 그 때문에 뭐든지 소유하는 것으로 본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두드러진 행동으로 본인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에고의 끝없는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옳은 말이다. 하지만 감천을 목적한 지성은 제 욕심으로 하늘을 움직이겠다는 괘씸한 시도일 수 있다. 될 일도 아니려니와 되면 더욱 고약해질 일이다.
#선배 목사가 주일예배 설교를 부탁한다. 그러기로 하고 교회를 찾아가는데 동행이 둘 있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열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언덕을 넘고 개울도 건너지만 번번이 생각해두었던 목적지가 아니다. 왜 이렇게 길이 어긋나지? 속에서 조바심이 부글거린다. 동행인 두 친구는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선배 목사의 찡그린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그러다가 곁의 한 친구에게 묻는다. 지금 몇 시? 그가 손목시계를 보면서 답한다. 열두시 반! 그럼 예배 끝났을 시간 아냐? 그렇지. 예배 다 끝났구먼!
이 한마디와 함께 온몸을 죄던 밧줄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다. 만세! 뜬금없이 선배 목사가 지나간다. 지나가면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큰소리로 부른다. 선배님, 죄송하긴 합니다만 고의가 아니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는 잘 마쳤지요? 그가 얼굴을 돌려 바라보며 슬쩍 웃는다. 말은 하지 않아도 이런 뜻이 전해져온다. 자네가 오지 않은 덕분에 성령님이 오셔서 기막힌 설교를 들려주셨네. 할렐루야!
선배 말소리에 놀라 꿈에서 깨어난다. 개운하다. 맞다. 뭐가 어찌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아멘 할렐루야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끝난 일이기 때문이다. 더 무슨 바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어난 사람에게는 만사가 좋고 고맙기만 한 거다. 악몽일수록 좋고 고마운 꿈인 것은 그것에서 깨어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비밀이다. 그리고 하나 더 고마운 사실! 꿈에서 깨어나는 건 꿈꾸는 사람이다. 꿈나라를 헤매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라틴어 비슷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뜻은 간결하다. “사람을 지켜라, 싸구려 술잔에서!” 값싼 쾌락에 빠져 익사하지 않도록 사람을 지키라는 말이겠다. 꿈속에서도 왜 이런 말을 새삼 들어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깨어나서도 잘 모르겠다. 시방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한 모금으로 비워지는 싸구려 술잔인지 모를 일이긴 하다. 힘든 노동으로 지친 일꾼에게 한 잔 술이 어떤 건지는 마셔본 사람이나 알 것이다. 그걸 우습게 여기는 건 건방진 짓이리라. 하지만 잠시의 즐거움에 빠져 익사한다면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은가? 오냐, 슬픔이면 슬픔, 기쁨이면 기쁨, 닥치는 대로 맛보자. 하지만 그게 전부인 양 착각하여 거기에 익사하는 일만큼은 경계할 일이다. 명심하자, 어떤 것도 영구하지 않다.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그러니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즐기자. 하지만 찰나의 즐거움에 빠져죽지는 말자.
글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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