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약값 200만원 부담…"숨 막혀" 감기로 응급실 가는 천식 환자들

박정렬 기자 2023. 4. 2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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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매년 약 200만명이 천식으로 병원을 찾는다. 염증 반응으로 인해 '숨길'인 기관지와 폐가 부으면서 호흡 곤란과 흉통, 만성기침, 쌕쌕거림 등 다양한 증상을 유발하는 병이다. 천식이 심한 경우는 감기만 걸려도 숨이 막혀 응급실에 실려 올 수 있다. 특히, 전체 환자의 6~10%가량이 해당하는 중증 천식은 증상 조절이 까다로워 사소한 자극에도 위협적인 상황에 부닥칠 위험이 크다.

만성적인 염증은 기관지를 공격해 가래를 만들고 호흡기 근육의 수축·경련을 일으킨다. 적절히 다스리지 못하면 기관지가 두꺼워지고 더는 회복되지 않는다. 염증 조절을 위해 가장 흔히 쓰는 약물은 흡입용 스테로이드다.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가 세계 천식의 날(매년 5월 첫 번째 화요일)을 맞아 27일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흡입용 스테로이드는 체내에서 99.9% 분해돼 평생 써도 안전하다"라며 "일상생활은 물론 마라톤을 뛰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증상 조절이 잘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흡입용 스테로이드가 듣지 않는 10%의 '중증 천식' 환자다. 이 경우 좀 더 강력한 먹는(경구용) 스테로이드제를 써야 한다. 효과는 강력하지만 이와 비례해 부작용 위험 역시 커진다. 홍조, 백내장, 위궤양, 당뇨병, 고혈압, 복부 비만, 근감소증 등 다양한 합병증으로 사망 위험마저 커진다.

김태범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세계 천식의 날을 맞아 지난 27일 열린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중증천식의 질병 부담 및 미충족 수요’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김태범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전수자료를 분석했더니 중증 천식 유병률은 2002년 3.5%에서 2015년 6.1%로 증가했다. 환자 수로 따지면 7만명 정도다. 구체적으로 중증 천식은 일반 천식보다 연간 외래방문 횟수가 3배, 연간 입원 횟수는 약 2배 많았다. 연간 외래 비용은 3배, 약제 비용은 9~10배 높다. 5% 안팎에 불과한 중증 천식 환자가 전체 천식 의료비의 30%를 쓴다. 천식 자체의 위험도 크지만 경구용 스테로이드 합병증을 처치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된다.

김태범 교수는 "천식은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이 높고 특히 60세 이상에서 발병률이 두드러진다"며 "고령화 사회에서는 천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최근 중증 천식 치료에 경구용 스테로이드보다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생물학적 제제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병을 악화하는 특정 물질에 달라붙을 수 있는 단백질로 다른 정상 세포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표적 치료'가 가능하다. 중증 천식에도 80~90% 효과를 보인다. 세계천식기구, 국내 진료 지침 등에서 중증천식 환자에게 맞춤형으로 생물학적 제제 투약을 권고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우리나라는 즐레어(면역글로불린 E 억제제), 누칼라와 싱케어 (인터류킨5 억제제), 파센라(인터류킨5 수용체 억제제), 듀피센트(인터류킨4, 13 수용체 억제제) 등 5가지 생물학적 제제를 쓸 수 있는데 이 중 즐레어를 제외한 나머지는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매달 평균 200만원 정도 자비를 들여 써야 하는데 환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며 "좋은 약이 있어도 부작용이 있는 경구 스테로이드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기자간담회에서 중증 천식을 주제로 패널 토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현재 즐레어는 23개국, 누칼라와 싱케어는 각각 20개국과 9개국, 파센라는 20개국, 듀피센트는 11개국에서 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순천향대부천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장안수 교수는 "주요 국가와 비교해 한국은 유독 보험 급여가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상헌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게 중증 천식 치료의 가장 큰 현안"이라고 덧붙였다.

정재원 인제대 일산백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겉으로 볼 때 똑같은 중증 천식도 어떤 물질이 염증을 유발하느냐에 따라 효과적인 생물학적 제제가 각각 다르다"라며 "치료 목표에 가장 잘 듣는 '무기'를 써야 하므로 급여 적용에도 유연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영구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이사장(단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 내과)은 "국내 중증 천식 치료 환경 개선이 시급한 만큼 환자들의 질병 부담과 생물학적 제제 비용효과성을 충분히 고려해 조속한 급여 논의가 이뤄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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