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귀어진! 지키지 못하면 문성곤이 아니다

김종수 2023. 4. 2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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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최강팀 안양 KGC에게 연패는 없었다. 27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KGC가 서울 SK를 81-67로 이겼다. 1차전 충격패를 씻어내는 반격의 시작이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KGC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수 위라는 평가와 함께 시리즈를 시작했다. 뜻밖에 1차전을 잡은 팀은 SK였고 이를 지켜보는 KGC팬들의 실망감은 컸다.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부터 '전임 김승기 감독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아쉬움의 한숨까지 다양한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같이 특정팀끼리의 대결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어지간히 전력 차이가 나지않는 이상 일방적인 승패는 나오기가 더 힘들다. 더욱이 KGC는 SK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팀이다.


KGC가 전포지션에 걸쳐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를 자랑하고 선수층도 탄탄한데 비해 SK는 지난시즌 통합우승의 주역 안영준과 최준용의 공백이 뼈아프다. 정규시즌 MVP 김선형(34‧187cm)과 최우수 외국인선수 자밀 워니(29‧199cm)의 'MVP 콤비'가 원투펀치를 이루어 화력농구를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둘중 하나만 있었어도 또 위력이 달라졌을 것이다.


KGC가 1차전을 내준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SK 메인 볼핸들러 김선형을 활개치도록 놓아둔 부분도 크다. 변준형, 박지훈 등이 돌아가면서 압박수비를 펼쳤지만 상대가 되지않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못한게 아니라 김선형의 폼이 절정에 달한지라 가속엔진에 제동을 걸 수 없었다.


플레이오프 내내 증명되었다시피 SK 공격의 시발점은 김선형이다. 김선형이 개인 공격으로 상대 수비진을 휘젓고 다니면서 워니와 번갈아가면서 주포 역할을 하고 2대2 플레이를 펼친다. 그런 와중에 수비의 눈길이 원투펀치에 쏠리면 포스트 인근의 최부경, 외곽의 허일영 등을 봐주고 여기에 플레이오프 들어 ‘마네킹 3총사’라는 별명을 얻게된 최원혁, 최성원, 오재현등이 돌아가면서 에너지레벨을 보태준다.


때문에 KGC로서는 김선형 봉쇄에 사활을 걸어야했는데 그래서 2차전에서 꺼내든 카드가 바로 ‘4년연속 수비왕’ 문성곤(30‧195.6cm)이다. 문성곤은 자타공인 현역 최고 수비수다. 그간 KBL역사에서 수비로 경기를 지배한 선수는 신명호, 양희종 등 지극히 극소수다. 문성곤은 그러한 ‘슈퍼 디펜더’계보를 잇고 있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문길동’, 한번 찍은 상대는 절대로 놓치지않는 ‘사냥개’ 등의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 혹은 마크맨에 대한 문성곤의 집착은 엄청나다. 다소 순둥순둥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코트에 들어서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타팀 주전급 포워드들에 비해 공격력에서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는 엄청난 수비력으로 팀에 공헌한다.


신장대비 스피드, 운동 능력은 물론 체력까지 발군이라 경기 내내 엄청나게 뛰어다닌다. 끊임없이 코트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팀의 에너지레벨을 높혀주는 것을 비롯 쉼없는 허슬플레이를 통해 분위기 또한 끌어올려준다. 푸트웍, 점프력 역시 빼어나 가로수비, 세로수비에서 모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적극적인 박스아웃, 위치선정 등을 통해 공수 리바운드 경합에서도 강점을 보이며 거기에 더해 기가막힌 타이밍에 도움수비를 들어가는 등 팀수비에 대한 이해력도 높다는 평가다. 특히 리바운드에 대한 의지가 매우 높은 편인지라 공이 림을 맞고 튕겨났다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나가 쟁탈전을 벌인다. 별다른 페이스 조절 없이 풀파워로 플레이하는 느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막판까지 에너지레벨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문성곤이 2차전에서 김선형 봉쇄 특명을 받고 코트에 나섰다. “같이 죽자는 마음으로 막았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성곤은 김선형과 ‘동귀어진(同歸於盡)’ 혹은 ‘양패구상(兩敗俱傷)’을 각오했다. 앞선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는가하면 일부러 특정 공간을 열어준뒤 뒷선 선수들과 함께 도움수비를 가는 등 다양한 형태로 괴롭혔다.


이번시즌 나이를 잊은 듯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김선형도 사람이다. 안영준, 최준용의 공백 속에서 정규시즌 내내 어깨에 큰짐을 진채 야전사령관이자 돌격대장 겸 토종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홀로 수행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뛰고 또 뛰었다. 30대 중반의 나이를 감안했을때 체력이 방전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리그 최고 수비형 포워드 문성곤이 대놓고 자신을 전담마크했으니 어려움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1차전에서 김선형은 22득점, 6리바운드, 12어시스트로 전방위 활약을 펼쳤다. 공격이든 패스든 원하는데로 됐다. 반면 2차전에서는 10득점, 2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기록에서부터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슛시도 횟수였다. 1차전에서 15번의 슛을 시도한 것에 비해 2차전에서는 7회에 그쳤다. 문성곤은 동물적인 감각이 빛나는 수비수다. 다양한 스타일의 상대와 맞서다 상대의 장점을 본능적으로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김선형은 리듬을 잘타는 공격수인데 2차전에서의 문성곤은 그런 리듬을 간파하고 자신도 그 리듬에 자연스럽게 몸을 실어 수비의 그림자 속에 목표물을 가둬버리는 모습이었다.


더불어 문성곤은 김선형을 철저히 연구하고 수비에 나선 모습이었다. 최근들어 김선형이 더욱 무서워진 점은 특유의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살린 플레이에 더해 다양한 페이크 동작을 통해 쉼없이 수비를 흔든다는 점이다. 문성곤은 김선형의 공격방향을 상당부분 예상하고 나온듯 미리 길목을 차단하는 예측 수비에 더해 여러 가지 페이크 모션에도 좀처럼 속지않았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김선형이 다른 경기에 비해 활약이 줄어든 이유다. 마치 과거 현대와 SK의 챔피언결정전 당시 이상민을 전담마크해 족쇄를 채우던 로데릭 하니발같았다. 물론 김선형같은 고수는 연달아 같은 수에 당하지 않는다. 3차전에서는 문성곤의 수비에 대비한 다른 전략을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든 뚫어내는 최강의 창’ 김선형을 상대로 문성곤은 또다시 철벽 방패를 들이댈 수 있을까? KGC팬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문성곤이라면 그 어려운 미션을 수행할 것이라고 믿어의심치않는 분위기다. 지키지못하면 문성곤이 아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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