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 성공 이면 틈바구니 속 윤리를 집어넣는다면
여성민우회 주최 '재현의 윤리와 저널리즘을 고민하다' 라운드테이블
넷플릭스는 왜 '나는 신이다'를 선택했을까
넷플릭스 OTT 시사고발 프로그램 문제점은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넷플릭스'라는 OTT(Over The Top,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상업 플랫폼이자 미디어 사업자다. 기본적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엄청난 경쟁 안에서 승자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사업자다. 넷플릭스 안에 성소수자 인권을 말하는 다큐멘터리와 성소수자를 비아냥거리는 스탠딩 코미디가 같이 있는 것은 윤리적 판단보다 시장 논리를 따르는 '넷플릭스'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수의 한국 제작사가 넷플릭스라는 OTT를 통해 택한 전략은 '선정성'이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진행된 '〈나는 신이다〉는 다르지 않았다: 재현의 윤리와 저널리즘을 고민하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손희정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이 포르노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어떤 작품 안에서 누군가가 그걸 보고 포르노적으로 느꼈다면 그 작품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포르노적으로 매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나는 신이다>는 정확히 포르노적으로 매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나는 신이다>는 성폭력 사건을 시청자 흥미를 끄는 드라마적 '스토리'로 사용했다. 구조를 드러내는 분석이 아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피해자들의 증언을 자극적인 이미지, 영웅 서사와 함께 한 편의 드라마처럼 구성하고, 교주 정명석이 얼마나 악한 행동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구조가 가려지면서 남은 건 '폭력'이 아니라 분노뿐이다. 성폭력 범죄는 명확하게 권력구조가 나눠져있고 소수의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곳에서 반복되고 있는데, '사이비'라서 벌어진 '특이한' 사건으로만 비춰졌다는 문제점도 있다. 류벼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가해자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으로 서술이 끝났을 때, 이는 가해자를 제외한 모두를 관객으로만 만든다. 이 상황을 함께 바꿔나가야 할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잊어버리게 된다”며 “이 방송의 목적이 '진짜 해결'이었다면, 성폭력이 일어난 구조와 방식을 설명하며 성폭력을 일으키는 구조적 요인은 우리의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들어있다고 말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OTT에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신이다>의 선정성 문제가 촉발된 후, 'OTT 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OTT에도 저널리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OTT라고 하는 공간이 '윤리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OTT에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데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손희정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낸 부작용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을 때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OTT라는 공간은 파급력은 클 수 있되 책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그런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공적 자리에서 담론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질문해야 한다. 아직 'OTT 저널리즘'이라고 승인해주면 안 되는 상태”라고 말했다. 아울러 “넷플릭스가 어떻게 자유라는 기치를 가지고 불법의 영역까지 넘어가는가를 함께 고민해야하는 때”라고 말했다.
홍남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도 “OTT라는 오락 플랫폼에 'OTT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들려면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공적 가치를 OTT가 수행하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PD들은 제작하는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매체라고 해석하는데, 그런 표현의 자유는 사실 성과 폭력의 재현이 과도하게 많거나 지상파에서는 할 수 없는 선정적인 재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성과 폭력을 마음대로 재현하는 게 표현의 자유인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성찰 필요한 저널리즘 윤리
기존 언론과 미디어의 책임성에 대한 반성도 나온다. 특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피해자가 방송 출연에 동의했다'고 말하는 방송사의 무책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성폭력 피해자 상담과 지원을 하는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실제 피해자들이 언론에 협조하면서 겪었던 사례들을 나눴다. 김혜정 소장은 “얼마나 선정적인지 알지만, 피해사실을 고발하기 위해 시청률이 가장 높은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이제는 OTT에서 이런 다큐멘터리가 많이 생성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언론 협조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겪은 부정적인 경험도 많았다. 김혜정 소장에 따르면 출연 전 '기획서를 보고 방송 의도가 파악하면 리얼함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방송사에서 피해자의 기획서 열람 요청을 거절한 사례도 있다. 피해자를 간곡하게 섭외하고 우려사항을 모두 들은 사람과 현장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사람, 편집하는 사람, 데스킹하는 사람이 다 다르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피해자가 이에 대해 물었을 때 “팀이 달라서 우린 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장 PD가 무리한 질문까지 던져 대답은 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걱정돼 '그 내용은 절대 나가면 안된다'고 당부했음에도 방송에 나간 경우도 많았다. 방송이 나간 후 문제제기를 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선정적인 콘텐츠 경쟁 분위기에서도 저널리즘 윤리를 고민하는 언론인도 있다. 김혜정 소장은 “기획의도를 물으면 '우리에게 편집권이 있는데 당신이 왜 기획 의도를 궁금해하느냐'며 소통하려 하지않는 기자가 있는 반면, 적극적으로 피해자와 소통하면서 원인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자문을 받으며 후속 보도까지 고민하는 기자가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들이 기자들에게 제보를 정말 많이 한다. 소스를 제공 받았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한다. 보도 이후에 이 사건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좀더 책임있게 고민하며 모니터링도 함께할 수 있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일에 언론도 하나의 역할을 하도록 협업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희정 교수는 “많은 방송사 관계자가 '방송사에선 못했는데, OTT 가니까 할 수 있었다. 나는 능력이 있는데 한국 방송이 보수적이어서 뜻대로 하지 못한다'라고 인터뷰한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에서 OTT에 가서야 비로소 발휘될 수 있었던 실력이라고 하는 건, 선정성과 폭력의 재현이었다”며 “이처럼 언론이 현재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 내몰려있고 주목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미디어 환경을 그대로 둔 채로는 책임을 묻기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자본 논리가 잠식한 미디어환경이라고 하더라도 저널리즘에는 법적 책임을 넘어서는 윤리적 책임이 필요하다. 손희정 교수는 “법정에서 끝나는 일로 책임을 다 질 수 있다면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다”며 “시장적인 방식으로 저널리즘에 접근하게 만드는 것이 글로벌 OTT 자본이 하고 있는 일인데, 여기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박성제 전 MBC 사장은 2월24일 〈피지컬:100〉의 성과를 짚으며 “MBC는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다”라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글로벌 OTT로 타깃을 전환하겠다는 포부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콘텐츠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제작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팀장은 “〈나는 신이다〉의 경우 MBC의 저널리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필요하진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MBC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남희 교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정치적 입장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미디어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다”며 “분명히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피해자를 재현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거기에 동참하도록 넷플릭스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유튜브 혹은 넷플릭스에 문의했을 때 한국 담당자가 없다고 하면, 담당자를 있게 만든다든가 하는 방법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참여와 비평의 중요성
수십 년간 지속된 가톨릭 교단 내 성폭력 사건을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이 폭로한 실화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도 자주 언급되는 사례다. 영화에서 취재 중 성직자들의 성폭력과 관련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는데, 한 기자가 다른 언론사에서 이 내용을 먼저 보도할 수도 있으며 “쓰레기들을 잡아야 한다”며 보도를 밀어붙이자, 선임은 “체계를 파헤쳐야 한다”며 보도를 막는다. 류벼리 활동가는 “충격적인 사건을 모으는 것, 그 사건을 제일 먼저 보도하는 것,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 등은 언론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라며 “성폭력과 그 해결 과정에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성현 PD는 <나는신이다>의 성공을 말하며 '이렇게까지 선정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많은 사람들은 다큐의 성공을 '선정성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손 교수는 “선정성 덕분이 아니라, 선정적인 작품을 보고 이걸 선정적이지 않다고 해석한 시청자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10년 전에 이런 다큐가 나왔으면 이렇게 파급력을 갖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어디 자랑이라고 나왔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거다. 시청자들이 피해자의 고통을 보는 시청자성이 등장했다. 사실 목소리가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그 영향력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선정성 덕분에 흥했다고 해석하면 안된다.” 손 교수의 말이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도 “문제적 방송을 시청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문제”라며 “범죄 행위에 대해 공분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모아졌기 때문에 그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작동하게 된다. 방송의 역할도 분명히 있지만, 그 방송이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시민의 끝없는 비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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