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당’? 이준석·박지현도 나선다면 성공 가능성도”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내년 4월10일 총선을 약 1년 앞두고 정치권에 '제3지대'가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금태섭 전 의원이 "새로운 세력이 필요하다"며 신당 창당 의사를 표명하면서다. 여기에 거대 양 진영의 지휘봉을 모두 잡아봤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조력 의사를 밝히면서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소 이른 시간표라는 시각도 많다. 보통 제3지대나 신당 결성은 주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가 국민적 관심도가 가장 높고 결집력도 강하기 때문이다.
1년 새 두 배로 불어난 무당층, 30% 넘어
그럼에도 지금 금 전 의원의 시도가 정치권과 언론 등의 주목을 받는 건 극에 달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갤럽이 4월18~19일 조사해 발표한 4월 3주 차 자체 정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無黨層) 비율이 31%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9일 대통령선거 이후 최대치다. 같은 조사기관의 지난 대선 직후 첫 정기 조사(3월15~17일 실시)에선 무당층이 17%로 집계됐다. 기존 어느 정당에도 마음을 주기 싫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무당층이 약 1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여론조사 관련 더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각종 비위 논란은 물론이고 서로가 등 돌린 채 극단 지지층에만 기대고 있는 여야 모두에 대한 혐오감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도 이러한 정치권 현실을 명분으로 제시했다. 신당 창당 계획이 '깜짝' 발표된 4월18일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토론회 발제에서 금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모두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거대 양 진영이 '편 가르기' 정치에 매몰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무엇 때문에 경쟁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집권을 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의견 개진은 억제되고 진영의 이익과 승리를 위해서 복무해야 한다는 정체성 정치가 판을 친다." 금 전 의원은 이러한 정치가 "우리 사회를 조각조각 나누고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떨어뜨린다"며 악순환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금 전 의원은 새로운 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기존 한국 정치의 문제들을 일소하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추어야 하고, 자기편에 유리한 의제가 아닌 우리 사회에 진짜 중요한 문제를 찾아서 제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기존 정당들의 행태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반사체'가 되는 데서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비전을 제시하는 '발광체'가 되어야 한다"고 새 세력의 조건들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수도권 중심 국회 30석 정당이라는 목표치도 꺼내놨다. 더 나아가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석 전에 제3지대 깃발을 들어올리겠다. 내실 있게 준비해 추석 밥상에서 신당 이야기가 오가도록 하겠다"며 구체적인 타임테이블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 전 의원과 김 전 위원장의 제3의 세력 결집 시도에 대해 "제3의 세력이 성공한 전례가 없다"며 벌써부터 회의 섞인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기존 양당 진영의 비주류들마저도 '금태섭 신당'에 대해선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내 대표적 비윤(非윤석열)계인 유승민 전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신당에 관심 없다"며 "어지간한 의지와 비전, 매력, 이런 게 갖춰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비명계(非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이원욱 의원도 시사저널에 "최근 정치 지형에서 제3당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맺었다"며 금 전 의원과 김 전 위원장의 창당 선언에 대해서도 "아예 존재감 없이 끝나버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금태섭 신당'엔 "준비 부족" 회의적 반응
회의적인 전망의 최대 원인으로는 인물 부재가 꼽힌다. 기본적으로 신당 창당에 있어 구심점이 될 대선주자급 인물이 필수적인 요소로 거론되지만, 현재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나타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최종적인 정당의 운명과 상관없이 선거에서 목표한 바를 이룬 신당 사례만 놓고 본다면 1996년 자민련에 김종필 전 총재가 있었고, 2016년 국민의당엔 안철수 의원이 있었다. 그 외에 가장 최근의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 바른정당과 새로운물결 등은 결국 구심점 부족으로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 등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역시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인물을 신당 창당의 제1조건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과 같은 대전환기에는 (신당의 성공을 위해선) 참신한 인물이 필요한데 새로운 인물만 가지곤 안 된다. 우리 국가 앞에 닥쳐온 여러 분야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량으로 시대를 읽는 눈과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예리해 국민이 전폭적인 호응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굉장히 위력적일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성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외에도 다수의 정치권 관계자가 인물 외에도 지역적 기반, 조직, 세력 등 다른 필수 요소들 또한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창당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가 중요할 텐데, 선거 때가 되니 한번 나서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며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인물·자금·조직 등 다양한 요소가 필요한데 단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비윤계로 꼽히는 국민의힘 한 인사는 "정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는 것 같다.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는 평도 많다. 금 전 의원이나 김 전 위원장도 모두 기존 정치권 사람들 아닌가"라면서 "게다가 타이밍이 너무 이르다. 현재 정당에 속한 사람들이 움직이기엔 아직 원심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도 신당, 명분 등 여건은 어느 때보다 좋아"
그러나 거대 양당을 제외한 정치권 대다수가 새로운 세력 등장의 당위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게 사실이다. 이른바 '금태섭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원욱 의원도 "국민은 지금 양당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민주당 지지도가 국민의힘을 앞서고 있다 해도 무당층엔 지고 있다"며 "(신당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그 정당처럼 폭발적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양극단 정치가 심화할수록 역설적으로 중도층은 넓어진다. 중도 신당은 명분으로나 여러 가지 여건에서나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특히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제3 세력 결집을 준비해 왔거나 그와 같은 고민들을 해온 그룹들이 금태섭 전 의원 그룹 외에도 여럿 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각의 그룹이 전·현직 의원들을 포함해 원로·학계·청년 등 다양한 인사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한 그룹에 속한 전직 의원은 "금태섭 전 의원과 김종인 전 위원장이 선제적으로 언급한 것이지만, 이미 꽤 오래전부터 기존 정당과는 차별화된 신당 혹은 세력을 꾸리기 위해 각계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모여 논의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이가 새로운 세력에 대한 의사를 나타낼 것이고, 뜻과 방향성 등이 맞다면 여러 집단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청년 정치인 다수가 포함된 그룹에 속한 한 정치권 관계자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정치 형태, 지형으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는 이들과 꾸준히 대화하고 있다"면서 "금 전 의원의 창당 선언이 반가운 부분이 있고,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모여 얘기를 나눈다면 조금 더 선명하게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세력을 결집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륙하기 위해선 '금태섭 신당'에 집중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 전 의원이 제시한 방식 역시도 오답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초당적 청년 정치인들이 모인 '정치학교 반전'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신당이 출현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데,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느냐다. 현재 금태섭 신당은 선언적 의미이지 실체가 있는 것 같진 않다"면서 "신당 성공을 위한 몇 개의 키워드를 살펴보면 우선 초당적이어야 하고, 청년들이 주도해야 하며, 또 양극단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마크롱 대통령 같은 '전투적 중도주의'에 유권자들이 반응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2030세대 지지 동원할 영향력 있어야"
유 대표가 언급한 대로 다수의 인사가 새로운 세력과 관련한 키워드로 '청년'을 거론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30%에 달하는 무당층 중에서도 20대 비율은 50%가 넘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전반적으로 회의적이지만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전체 무당층 중에서 절반 이상인 2030세대를 동원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고,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꼽히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나 박지현 민주당 전 비대위원장 같은 인사들이 나설 경우"라고 내다봤다.
실제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두 사람은 신당 합류 후보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들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까지 두 사람은 신당과 관련해선 별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 전 대표는 최근 MBC 라디오 《윤동현의 좋은 아침》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고민해본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유승찬 대표는 "기존 정치인들은 대부분 힘의 관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다면 그때 가서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금태섭 전 의원과 김종인 전 위원장이 쏘아올린 제3의 세력 결집 신호탄은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까. 성공적으로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한 정치계 원로는 "유권자의 요구도 있고, 여러 정치인의 갈망도 강한 듯한데, 누가 중심이 될지, 어떤 형태가 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며 "인물을 계속 얘기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아예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나 정치권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이러한 움직임을 회의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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