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메디컬 考試’의 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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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능은 '메디컬고시'로 불린다.
수능이 의사가 되는 관문으로 통해서다.
너나 할 것 없이 의사가 되겠다는데 사람 살리는 의사는 부족하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사로 굳이 수능 만점자가 필요하진 않다"며 "의사에게 필요한 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이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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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능은 ‘메디컬고시’로 불린다. 수능이 의사가 되는 관문으로 통해서다. 요즘 대학 서열 꼭짓점에는 의대가 있다. 지방 모든 의대가 성적순으로 다 차야 서울대 공대를 쳐다본다는 얘기도 있다. 서울대 등 최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도 의대를 가기 위해 자퇴를 하고 재수, 삼수를 마다치 않는다.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도 성행하고 있다. 직업관과 적성이 생기지도 않은 어린아이들마저 의대 열풍에 내몰린 것이다. 이쯤 되면 의사가 웬만한 전문직을 압살했다고 할 정도다.
정작 의료 현장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의사가 되겠다는데 사람 살리는 의사는 부족하다. 의대가 최상위권 인재들을 빨아들였지만, 이들이 필수의료가 아닌 돈 잘 버는 과로 쏠리고 있어서다. 의대를 지망하는 주된 이유가 고소득인 점과도 맞닿아 있다. 기형적인 현상은 또 있다. 지방대 의대에는 학생들이 몰리지만, 지방대 병원은 의사 구하기가 힘들다.
돈 잘 버는 의사는 늘어도 명의는 드물어졌다. 얼마 전 취재했던 한 대학병원에는 초인 같은 신경외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월요일 새벽에 출근하면 금요일 늦은 밤에야 귀가하곤 한다. 외래진료는 오후 8시 넘어 가장 늦게 끝난다. 머리를 여는 개두술 특성상 환자들에게 장애를 남기기도 해 수술 전후로 꼼꼼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하루 2∼3건씩 개두술을 집도한다. 1년으로 따지면 260건 정도다. 14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치고도 환자 예후를 살피기 위해 연구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기 일쑤다. 환자들에게는 건강식을 권하면서도 자신은 시간에 쫓겨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잦다. 운동이나 취미는 사치다. 주말에도 응급수술 탓에 ‘온콜(호출당직)’에서 자유롭지 않다. 적당하게 타협하고 살아도 되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의사가 됐으니까요.”
그런 그도 만약 뇌출혈 진단을 받으면 누가 수술해줄지 걱정된다고 했다. 개두술을 배우려는 후학도, 가르칠 수 있는 의사도 줄어서다. 이공계 대신 의대를 택해도 필수의료는 택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필수의료 값어치를 떨어뜨린 정책 탓도 크다. 직업 선택에는 한 사람의 역사가 녹아 있다. 업(業)의 본질도 있다. 심장과 뇌를 고치는 흉부외과와 신경외과 의사들에겐 독특한 DNA가 있다고 한다. 힘들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만 고집한다. 이들 덕분에 최소한의 전공의 지원율은 유지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사로 굳이 수능 만점자가 필요하진 않다”며 “의사에게 필요한 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이해”라고 말했다. 일하는 의미를 모르면 가치를 잃는 게 의사다. 모두가 환자를 살리는 영웅이 될 순 없다. 하지만 치료를 잘하겠다는 의사보다 돈 벌 궁리를 하는 의사를 자주 보는 현실은 비정상이다. 의사를 부러워해도 존경하지 않는 세태와 무관치 않다. 업의 본질과 동떨어진 선택은 우리 사회 인적 자원의 배분을 왜곡시키는 결과도 낳고 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병원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돈보다는 환자를 지키겠다는 소명의식에서 나왔다는 한 의사의 고언을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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