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여행자에게 돈만 쓰고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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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해마다 수재의연금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돌발적인 천재지변이나 사회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의연금을 걷었습니다.
어떻게 된 게 해마다 물난리가 발생했고, 그때마다 학교는 반강제로 수재의연금을 걷어갔습니다.
강릉 산불로 시름에 잠긴 주민을 돕기 위해 펼쳐지고 있는 '동해안 여행가기' 캠페인을 지켜보다가 오래전의 수재의연금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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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해마다 수재의연금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돌발적인 천재지변이나 사회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의연금을 걷었습니다. 의연금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 두 번째가 자칫하면 준조세가 될 우려가 있으니 1회에 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게 해마다 물난리가 발생했고, 그때마다 학교는 반강제로 수재의연금을 걷어갔습니다. 국가는 해마다 반복되는 재난에 속수무책이었고, 수해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에게 손을 벌리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강릉 산불로 시름에 잠긴 주민을 돕기 위해 펼쳐지고 있는 ‘동해안 여행가기’ 캠페인을 지켜보다가 오래전의 수재의연금을 떠올렸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역에 재난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여행가기 캠페인입니다. 관광객의 소비를 통해 피해 지역을 돕자는 취지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책 당국이 피해 지역의 경기회복을 여행자 개인의 선의의 소비에 기대는 듯한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여행가기 캠페인의 핵심은 ‘피해 지역에 여행 와서 돈 좀 쓰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때 여행자의 지위는 그저 ‘소비하는 이’일 따름입니다. 적어도 피해 지역으로 여행을 권유하겠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을 깎아주든지, 숙박비 일부를 지원해주든지 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여행자에게 돈만 쓰고 가는 게 아니라 피해 지역 주민과의 교감과 교유의 계기라도 만들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여행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설득하는 지자체의 모습에서 오버랩되는 건 코로나19 확산 당시 일부 지자체가 만개한 유채꽃밭을 트랙터로 갈아엎던 장면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엄중하던 상황이긴 했습니다만, 꽃밭을 밀어버리는 것으로 관광객을 쫓아버렸던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 지자체들이 이제 상생과 착한 소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관광이란 공간이나 상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관광객의 ‘마음을 사는’ 일입니다. 이제 소비나 수입보다 더 중요한 건 ‘관계’입니다. 좋은 관계 속에서 여행자와 여행지는 함께 성장합니다.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흘깃거리는 게 아니라, 피해 지역과 관광객이 좋은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행 캠페인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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