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 신카이 감독, “한국 인기 얼떨떨…日 애니는 아직 성장중"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올들어 일본 대중문화가 살아나고 있다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본 천재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카제 등 J팝이 일본뿐 아니라 한국 MZ 세대 팬들에게 인기를 거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진원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지난 1월 개봉한 이후 455만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지난 26일까지 497만 관객수를 기록했고 500만 관객 돌파도 확정한 셈이다. 올해 개봉작들 중 흥행 1위에 올랐다. 영화계에서는 코로나 상황이 회복되고도 극장가 흥행은 원래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위축된 상황에서 이런 흥행은 매우 유의미한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과 한국뿐만 아니라 북미와 중국에서도 크게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마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新海誠·50)이 내한해 국내 언론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지난 3월 300만 관객 돌파 공약을 지키기 위해 불과 한 달 반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주오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애니메이션 ‘둘러싸인 세계’ 연출로 데뷔한 신카이 감독은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 ‘스즈메의 문단속’(2022) 등 ‘재난 3부작’을 완성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에서 1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한국에서도 탄탄한 팬덤 기반을 지니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하라 나노카)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들을 막기 위해 신비로운 청년 ‘소타’(마츠무라 호쿠토)와 함께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신카이 감독은 20년동안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의 한국내 인기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전작 ‘너의 이름은.’은 혜성의 재해를 그리고 있어 ‘스즈메‘보다는 알기 쉬웠다. ‘스즈메’는 12년전 일본에서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을 그리고 있는데다 친절한 작품도 아니어서 과연 한국관객이 많이 봐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일본적인 이야기에 한국 관객이 열광하는 현상을 바라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덕분에 이번 한국방문은 친구 집 놀러가듯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신카이 감독은 “제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오던 지난 20년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았던 적도 있지만,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그런 점과 상관없이 한국 관객들과는 꾸준히 커뮤니케이션을 해온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어 “제 작품이 일본 것이라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국가 간 문화 콘텐츠를 접하는 경계가 무너졌다. 특히 기성세대에 비해 젊은 관객들은 국가간 문화 저항감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면서 “한국 관객들이 일본 애니메에션을 좋아하듯이 일본 사람들도 K드라마와 K팝을 즐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에게 2011년 도호쿠(東北) 지방의 동일본 대지진은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신카이 감독도 동일본 대지진을 그려내면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을 이제서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기지 못한 분들이 수천명이나 계신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하며 몇가지 원칙을 지켰다. 우선 직접적인 묘사는 하지 않았다. 쓰나미가 일본을 덮치는 장면이나 동일본지진이 일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과 돌아가신 분들을 재회하게 되는 이야기도 만들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스즈메의 엄마도 돌아가신 분이고, 딸과 재회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일본 극장에서는 상영전 트라우마가 있는 분은 내용을 모르고 보다가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주의보를 내보내는 등 여러 작은 장치를 고민했다.”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항상 관객들의 작품내 장소 방문으로 이어진다. 관광 촉진에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스즈메’의 공간은 일본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만큼 세심하게 만들어졌다.
“스즈메의 마을은 가공으로 만들었다. 스즈메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는 장소도 가공의 동네다. 성지순례라며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분들이 많았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민폐도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잘 살고 있는 이들중 환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너의 이름은.’의 경우에도 그랬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공의 마을로 설정했다.”
세심한 배려다. 신카이 감독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호쿠 지방에서 서쪽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즈메가 규슈(九州)끝에서 출발해 도호쿠로 전국 여행을 다니며 재난을 막는 여정에 나서는 것으로 설정했다. 스즈메가 여행을 하면서 들러는 곳도 시코쿠(四国)의 에히메현(대홍수), 고베(한신 아와지 대지진) 등 과거 재해가 발생했던 지역이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일본 에니메이션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활약하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보다 내리막길을 걷는 게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는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겠다. 저는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걸 볼때 오히려 성장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화를 기반으로 한 IP(지식 재산)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으로 더욱 활발하게 확장되는 있다는 것이며, 이는 제작과 배급에서 십수년에 쌓인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 신카이 감독은 “일본 아니메는 여전히 손그림으로 그린다. 한장 한장 그리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다. 업데이트는 일본의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이게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란 2시간 짜리의 긴 곡(노래)이다. 한 영화에서 템포 빠른 곳과 천천히 가는 부분 있다. 어떻게 재밌게 할지,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대사를 녹음해 넣고 그 스토리에 맞춰 그림을 넣기도 한다.”
신카이 감독은 간담회 후 곧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온 한국관객들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예정이라고 했다. 외국 말로 된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거듭 인사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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