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치료제·식욕억제제 ‘의료용 마약’ 너무 쉽게 구한다

2023. 4. 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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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조디아제핀·메틸페니데이트·펜타닐
5년간 처방량 75%에서 230%까지 급증
각성효과에 남용시 환각·환청 증상 유발
외국시민권자 주장·신분증 위조 ‘의료쇼핑’

각성 효과가 있는 의료용 마약은 치료 목적으로만 신중하게 쓰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료용 마약 처방 건수도 급증하고 있어 의료용 마약이 일반 마약의 대체제, 혹은 입문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의료용 마약 처방 현황’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ADHD 치료제(벤조디아제핀, 메틸페니데이트), 식욕억제제(펜디메트라진), 진통제(펜타닐) 처방은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DHD치료제 벤조디아제핀은 2018년 5억811만개이던 처방량이 2018년 10억9038만개로 크게 늘더니, 2019년 10억9038만개, 2020년 11억5105만개, 2021년 12억1808만개로 꾸준히 늘다 지난해에는 12억4546개가 처방됐다. 5년 사이 78%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 환자 수는 850만명에서 1300만명으로 52% 늘어나, 처방량 대비 훨씬 작은 증가폭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ADHD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역시 같은 기간 처방량이 1725만개에서 5695만개로 230% 늘어나는 동안, 환자 수는 9만3961명에서 22만1483명으로 135% 증가했다.

이밖에 식욕억제제 펜디메트라진은 지난해 1억4968개가 처방돼 5년 사이 처방량이 78%(6601만개) 늘고, 펜타닐은 1411만개로 75%(605만개) 늘었다.

문제는 이 같은 의료용 마약이 일반 마약으로 가는 입문 역할을 하거나 중독자가 임시방편으로 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의료용 마약의 경우 각성 효과가 있거나 오·남용 시 환각, 환청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로폰을 투약해왔던 김모(29)씨는 2021년 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ADHD 진단을 받고 오히려 메틸페니데이트에 중독됐다. 김씨는 “치료제를 아껴뒀다가 한꺼번에 복용하거나, 내성이 생겨서 약이 부족하다고 하며 처방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복용했다”고 말했다.

올해 초 제주도에서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여성이 6중 추돌사고를 낸 사건도 의료용 마약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다. 해당 여성은 펜타민 성분의 식욕억제제를 복용해왔으며,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 “전쟁 상황이라 어린이와 시민을 대피시키고 있었다”고 진술하는 등 환각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용 마약 쇼핑’ 정황도 매년 발각되고 있다. 이에 식약처에선 환자의 처방 이력 조회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처방을 받기 위해 신분을 위조하는 경우 등은 여전히 적발하기 어려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가 제출한 ‘연도별 의료용 마약 처방 환자 상위 30명’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처방량이 많았던 벤조디아제핀의 경우 50대 여성 1명이 534회에 걸쳐 2만3087개를 탔다. 그 다음으론 20대 여성이 1만9653개를 402회에 걸쳐 처방 받기도 했다.

했다. 메틸페니데이트 역시 지난해 20대 여성이 1년에 8122개를 처방 받은 사례가 나왔다.

의료계에선 병원 차원에서 의료 쇼핑을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좌훈정 대한일반과의사회장은 “환자 1명이 1년에 걸쳐 치료제를 수천, 수만개씩 처방받았다면 당연히 오·남용을 의심할 규모지만 병원 수십곳을 돌아다녔다면 각각 병원에선 정상적인 수준의 처방을 한 것”이라며 “보험 급여를 받았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에 따라 처방 이력이 뜨지만, 비급여라면 확인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식약처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의료용 마약 처방 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환자의 관련 이력 조회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 활용이 저조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환자가 의도적으로 신분을 위조하는 수법 등까진 걸러내기 어렵다. 한진 변호사(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는 “실명을 써서 의료쇼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개별 병원에서의 신분 확인이 철저하지 않다는 점을 노려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외국시민권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원과 환자가 공모해, 의료용 마약을 처방한 뒤 결제는 받지 않는 식의 수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 역시 “신분 위조를 하는 경우 적발이 어렵고, 의료용 마약이 대부분 정신과 약물이다 보니 환자의 간단한 진술만으로 처방이 쉽게 이뤄지는 점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혜원·박지영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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