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 바꾸면 현금 줍니다”… 정부, 생산성 둔화 위기에 외투기업 지원 사활

세종=전준범 기자 2023. 4.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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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韓 생산성 → 잠재성장률 하락 비상
尹 “외투기업 한국서 마음껏 경영 활동하도록”
기존 공장 설비 첨단산업화에 현금 지원하고
글로벌 기업 지역본부도 외투 지역 지정 가능

앞으로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외국인투자 기업은 기존 공장 설비를 첨단산업 관련 설비로 바꾸기만 해도 한국 정부의 현금 지원을 받는다. 글로벌 기업의 ‘지역본부’는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가능 업종에 포함돼 임대료 보조 혜택을 누린다. 또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국가첨단전략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투자 금액의 최대 50%를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 확대를 유도해 경제 성숙과 저출산·고령화 등의 여파로 점점 둔화하는 우리나라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조치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조한 생산성의 후폭풍으로 잠재성장률이 0%를 향해 가고 있다. 과도한 노동 규제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로 꼽힌다.

지지부진한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국내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주는 혜택을 강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설비 첨단산업화에도 현금 지원 혜택

28일 정부·산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외국인투자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정부는 한국에 진출한 외투 기업이 첨단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기존 공장 설비를 교체하는 경우 이를 현금 지원 대상에 포함할 방침이다.

현재는 외투 기업이 공장 시설을 새로 짓거나 증설할 때만 나랏돈으로 지원해준다. 앞으로는 기존 시설 내의 설비를 최신화하는 경우도 정부 지원 범위에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첨단산업 전환을 위한 기존 설비 교체 투자는 대규모 외자 유입을 수반한다”며 “신규 외국인투자 유치와 대등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정부는 글로벌 기업의 ‘지역본부’를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가능 업종에 추가하기로 했다. 외국인투자지역은 단지형·개별형·서비스형 등 3가지 형태다. 산업부는 이 중 서비스형에 글로벌 기업 지역본부를 포함할 계획이다. 서비스형 외국인투자지역은 임대료 보조 혜택을 받는다. 통상 임대료의 절반 정도를 정부가 내준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역본부는 글로벌 기업의 핵심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국내 유치 시 전문인력 고용, 선진 경영기법 도입 등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고 했다.

이달 26일에도 산업부는 외국인투자위원회를 열어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국가첨단전략기술에 외국인이 투자하면 투자 금액의 최대 50%까지 현금 지원 비율을 높이고, 국비 분담 비율도 10%포인트(P) 상향하기로 한 바 있다.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내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외국인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지원 제도와 투자 환경을 적극 개선하겠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현재 생산성 수준이 유지될 경우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50년 0%까지 낮아질 수 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에 주요 기업체 건물이 보인다. / 연합뉴스

◇ 생산성 둔화 위기에 외투 활성화 유도

정부가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주는 혜택을 강화하는 건 날로 추락하는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재 생산성 수준이 유지될 경우 2023~2027년 2% 수준인 잠재성장률이 2050년에는 0%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성장률이 2033년 0%대로 추락하고, 2047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생산성을 극대화할 정책 방향성에 관한 고민이 시급하다고 경고한다. 고영선 KDI 부원장은 이달 19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경제성장 전략 이코노미스트 간담회’에 참석해 “생산성 향상이 경제 성장의 핵심적인 결정 요인”이라며 “불필요한 수도권 규제를 풀어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고, 초광역 단위의 지역 거점 도시 육성에 정부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도 작년 5월 취임 직후부터 생산성 증대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 장관은 작년 7월 5일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생산성 향상의 한 가지 방법으로 설비투자 촉진을 언급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제로(0)에 가까웠다. 이는 경제 전체의 생산 기반이 나이 들어간다는 말과 같다”며 “생산성이 낮아지면 고물가를 잡고 고용을 늘리는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설비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면 투자가 촉진되고, 투자가 활발해지면 일자리가 생긴다”며 “우리 기업이 설비투자에 힘을 쏟도록 정책적인 힘을 모아주는 게 지금의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위기를 헤쳐나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주한 외투 기업 상당수는 한국이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개선해야 할 규제 분야로 '노동 규제'를 지목한다. 사진은 4월 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양대 노총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 총력투쟁 결의대회 모습. / 연합뉴스

◇ 외투 기업들 “韓 노동 규제 과도해”

윤석열 정부가 생산성 둔화 방어를 위해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상당수 외투 기업은 아직 한국을 크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는 분위기는 아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국 50인 이상 201개 주한 외투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3곳 중 1곳(33.8%)은 ‘한국의 규제 수준이 본사 소재 외국보다 높다’고 했다. ‘한국의 규제 수준이 외국보다 낮다’고 응답한 기업은 8.5%에 불과했다. 57.7%는 한국과 외국의 규제 수준이 비슷하다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주한 외투 기업은 한국이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개선해야 할 규제 분야(복수응답)로 ‘노동 규제’(48.8%)를 지목했다. ‘지배구조 규제’(23.9%), ‘인허가·건축 규제’(23.4%), ‘안전·보건 규제’(21.9%) 등이 뒤를 따랐다. 류기정 경총 전무는 “어려운 대내외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가 중요한 시점”이라며 “개선이 시급한 규제 분야로 노동이 지목된 만큼 국제 표준보다 과도한 규제를 조속히 다듬어 외투 기업이 체감하는 규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평가 분위기를 바꾸고자 각 부처에 “한국을 세계 최고의 경영 활동 무대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에쓰오일(S-OIL) 울산 온산공장에서 열린 9조3000억원 규모의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 참석해 “외투 기업이 한국에서 마음껏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과감하게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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