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한 이마·허연 머리… 황혼기에 접어든 남자를 닮았다[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2023. 4. 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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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황혼기에 선 남자를 닮은 큰노꼬메오름…정상은 대머리처럼 허허롭다

제주시 유수암리 큰노꼬메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모습. 탐방객들이 정상을 밟으려 하고 있다.
(4)큰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제주시에서 평화로를 타고 유수암리를 지나 새별오름 가기 직전에 어리목으로 빠지는 산록도로가 나온다. 그곳에 멀지 않은, 차로 5분여만 달리면 노꼬메오름으로 가는 길목이 오른 쪽으로 나 있다. 외길을 조금만 지나면 고사리가 많이 자라는 드넓은 벌판이 펼쳐지고 정면 쪽으로 큰노꼬메오름이 보인다. 누가 봐도 고사리가 많을 것 같이 생긴 벌판이다.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고사리 꺾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한 쪽에는 소길리 마을목장이 있어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드넓은 벌판을 지나 노꼬메오름 입구에 들어서면 솔향이 확 코를 찌른다.

노꼬메오름은 인생의 황혼기에 선 남자를 닮았다. 튼실한 돌계단은 세상풍파를 다 겪은 남자의 다리처럼 단단하다. 얼마 전 40년 만에 비행을 하는 송골매(배철수)가 들려준 ‘이 빠진 동그라미’가 되어 산을 탄다.

‘잃어버린 조각 찾아 때굴때굴 길떠났던’ 이빠진 동그라미. 어디 갔나 나의 한쪽/벌판 지나 바다건너/ 비탈진 산길/낑낑 올라/둥실둥실 찾아가네/저기저기 소나무밑/누워자는 한 쪼가리/비틀비틀 다가가서/맞춰보니 내짝일세….

큰노꼬메오름에서 만나는 풍광들. 제주 강동삼 기자

산수국화를 지나 조릿대 숲길을 지나 또 돌계단을 지나고 나면 비탈길 산길이다. 노래처럼 낑낑대며 올라가니, 머리가 허옇게 샌 큰노꼬메오름의 정상이 저만치 보인다. 숲길 무성한 2km 가까이 오르면 돌계단이 끝나면서 오른쪽으로 아찔할 정도로 탁 트인 한라산 절경이 눈에 들어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치 한라산 백록담이 금세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이마가 훤하게 드러난 중년남자의 얼굴이 익숙해지는 듯하다. 눌러쓴 모자가 날아갈 듯 바람에 위태롭다. 아찔한 오른쪽 낭떠러지 절경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얌전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자칫 방심해 발을 헛딛기라도 한다면 강풍에 위험한 추락도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아찔하다. 이 오름, 이 황혼기에 접어든 이 남자는 아직도 가슴 한구석엔 열정을 품고 있는 듯, 이따금 연분홍빛 진달래를 꺼내 보여준다.

큰노꼬메오름 정상쯤에는 거의 나무가 자라지 않는데 비탈길에 한 소나무가 도드라지게 서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정상 비탈길 남자의 왼편 이마엔 한가닥 머리숱처럼 소나무가 정갈하게 가르마를 타고 있다. 휑한 얼굴을 덮은 그 한 올의 소나무 같은 머리결은 강직한 남자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비탈길 아래 분화구의 아찔한 숲은 남자의 비밀을 드러날 것 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저 멀리 남쪽으로 산방산 머리가 빼꼼히 보인다. 그만큼 탁 트인 절경이다. 오른쪽으로 비양도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드림타워가 있는 제주시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머리숱이 적은 이 남자는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한라산 중턱의 풍경과 애월 앞바다가 멀리 잡힐 듯 아른거리는 풍경을 품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오를 것 같다.

인생의 절정기를 지난 남자를 만난 터라 그 어느 때보다 내려오는 길은 황망하다. 오르막 인생보다 더 힘든 게 내리막 인생이듯, 절정에 다다른 후여서 다리가 풀려서다. 그래서 족은노꼬메오름으로 난 길이 아닌, 올라왔던 익숙한 길로 내려온다. 천천히, 느긋하게…. 좀 늦어지면 어떠랴. 황혼기의 얼굴을 한 오름을 마주하고 보니, 재촉할 그 무엇도 부질없어 보인다. 황혼기의 남자처럼 남는 게 시간이다.

# 서부지역 자연휴양림 조성 추진 족은노꼬메오름… 서부권 랜드마크 기대감

족은노꼬메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제주 강동삼 기자

노꼬메오름 일대의 식생은 122과 469종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주요 식생은 서어나무, 단풍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졸참나무, 쥐똥나무 등 목본류와 가는 홍지네고사리, 관중 등 양치류가 서식하고 있다. 애월읍 소길리 산 258번지와 유수암리 산138번지에 있는 이 오름은 표고가 833m, 비고 234m, 일찍부터 ‘놉고메’로 부르고 한자 표기로는 고산고길산(高山高吉山)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놉고메’는 ‘노꼬메’로 소리가 바뀌게 되고 이것을 반영한 한자도 ‘녹고산(鹿高山·노꼬메)’으로 쓰기도 한다. 떨어진 2개의 오름으로 되어 있는데 좀 높고 큰 오름을 ‘큰노꼬메’로, 작고 낮은 오름은 ‘족은 노꼬메’라 부르고 있다.

제주도는 동부지역에 자연휴양림이 편중돼 있는 반면 서부지역에는 자연휴양림이 없어 바로 족은 노꼬메오름 일대를 서부지역자연휴양림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도내 자연휴양림은 제주시 절물·서귀포시자연휴양림과 제주도 소유인 제주시 교래·서귀포시 붉은오름 등 모두 4곳이다.

유수암리 산 28번지 일대 252,5㏊(도유지 80㏊, 국유지 172.5㏊)에 ‘가칭 제주시 서부지역 자연휴양림’이 조성될 예정이다. 서부지역 랜드마크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현재 국비 지원이 끊겨 제자리 걸음이다.

이 때문에 최근 도정 질의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지난 11일 제415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서부자연휴양림 조성사업에 대해 특별교부세 등 국비 확보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족은노꼬메오름의 산수국화, 정상의 키세스모양의 나무, 관중고사리서식지, 정상표지판(시계방향). 제주 강동삼 기자

지역균형 차원에서 행정에서도 2021년부터 서부지역 자연휴양림 조성을 위한 입지조사, 타당성평가 용역 등을 진행해 왔다. 현재 기본계획과 실시설계 용역도 마무리된 상태지만 국비 지원이 중단돼 답보 상태다. 총 예산이 103억원. 2023년부터 지방이양 사무로 전환되면서 5대 5로 국비와 지방비로 할 예정이었지만 국비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이에 오 지사는 “문화재 지표조사와 사전재해영향평가 이후 특별교부세 확보를 추진하겠다”며 “서부지역 자연휴양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계속 추진할 의지를 피력했다.

이승훈 제주시 산림녹지과장은 “노꼬메오름의 장점은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과 바다 전망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면서 “그 어느 곳보다 접근성이 용이해서 우선적으로 상하수도 시설, 방문자센터, 데크, 야영장 등 기반시설을 갖추게 되면 부분 개방은 금세 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다만 문화재지표조사 등 거쳐야 할 절차들이 남아 있어 빠르면 내년 상반기에 착공이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계획대로라면 올 하반기 착공 예정이었지만 이같은 절차로 인해 늦춰질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절물자연휴양림 등 여느 휴양림처럼 숙박시설, 편익시설, 체험, 교육시설, 체육시설 등을 조성하려면 2025년 준공해 2026년쯤 개장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부지역 자연휴양림은 족은노꼬메오름 일대 103억 예산 투입 조성

족은노꼬메오름 정상에 나무가 마치 오르느라 지친 듯 누운채 자라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자연휴양림이 들어설 족은노꼬메오름을 우습게 봤다간 큰코 다칠 수 있다. 창암재활원을 낀 도로를 타고 차로 조금만 달리면 작은 숲 주차장이 나온다. 표고 774.4m, 둘레 3112m, 면적 60만 1440㎡를 자랑한다. 이 오름은 분석구(scoria cone)로 오름이 갖고 있는 규모, 경사, 분화구 등 제주의 360여개의 오름들 중에서 화산지형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오름이다.

눈에 띄는 점은 입구에서부터 산수국화길이 펼쳐지고 정상에 오른 뒤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도 산수국길이 길게 펼쳐져 6월쯤 탐방하면 수국화의 자태를 만날 수 있으련만, 지금은 관중 고사리 서식지를 만나는 것으로 달랠 수 밖에 없다.

관중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서 나는 숙근성 양치류이다. 생육환경은 습기가 많고 토양이 거름진 곳에서 자란다. 키는 50~100㎝이고, 잎은 길이가 약 1m내외, 폭이 약 25㎝정도이며 뿌리에서 나온다. 줄기에는 광택이 많이 나고 황갈색 혹은 흑갈색의 비늘과 같은 것이 있다. 포자낭군은 잎 윗부분 가운데 가까이에 두줄로 붙어 있다.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관중은 살충작용이 있고, 해독, 해열, 지혈작용이 있다. 각종 코피, 대소변출형, 월경과다 등에 쓰며 기생충 제거에도 유효하다. 유행성뇌염, 유행성볼거리염, 바이러스성폐렴, 감기 바이러스억제작용 등에도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관중 서식지를 낀 소나무길을 지나면 큰노꼬메오름이 보이고 왼쪽은 고사리밭, 오른쪽으로 족은노꼬메오름과 궷물오름으로 가는 비탈길이 시작된다. 족은노꼬메오름은 큰노꼬메오름처럼 돌계단은 없지만 야자매트의 오르막이 계속된다. 중간쯤에선 야생오소리(족제비과) 서식지의 굴도 만난다. 족은노꼬메오름 정상에선 깍쟁이처럼 한라산 백록담도 간신히 비춰준다. 큰노꼬메오름도 다 드러내지 않아 섭섭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상에서 조금만 더 지나면 오히려 한라산이 가깝게 느껴지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는 이내 낭떠러지같은 내리막이 계속된다. 그래, 인생 2막처럼 내려가는 법을 다시 배운다. 더 조심하며, 더 세세하게 살펴보며…

혹시 작은 오름이라고 얕보고 늦은 오후 시간대에 탐방하다가는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다. 산수국길을 지날 때쯤 ‘상잣질’과 조우한다. 잣성은 조선시대에 제주지역의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이다. 제주도 중산간 해발 450~600m에선 상잣성, 해발 350~400m일대의 중잣성, 해발 150~250m일대의 하잣성으로 구분된다. 상잣성은 말들이 한라산 삼림지역으로 들어갔다가 얼어죽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그만 이 ‘상잣질’을 만난 뒤, 세갈래 길이 나와 당혹스러워진다. 어디로 가야 하나. 순간 가운데길을 택하고 만다. 그 선택은 미로의 숲을 걷게 만들었다. 그만 길을 잃는 낭패. 이정표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한참을 걸어 산록도로를 겨우 만나 다시 주차장에 도착한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6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리막 길에서 하마터면 숲 속에서 ‘길잃음’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잠깐 여기 쉬었다 갈래… 액티비티한 전율을 느끼고 싶다면 9.81파크

애월읍 어음리 애월문화복합단지내에 들어서 있는 스마트놀이터 9.81파크 실내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큰노꼬메오름에서 애월 방향으로 다시 돌아 5분여 달리면 평화로와 만나는 지점 서쪽 건너편에 애월바다와 한라산 사이의 스마트 놀이터인 9.81파크를 들렀다 가는 재미도 색다르다. 여기서 981은 9.81m/s²중력 가속도값을 의미한다고.

이곳은 국내 최초의 그래비티 레이싱 테마파크로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감각적인 실내 공간과 푸른 바다와 석양을 마주하는 실외공간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다.

무동력 카트에 ICT기술을 더한 그래비티 레이싱을 할 수 있는 메인 놀이기구(어트랙션)는 스릴만점.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2인승차를 타 초보자도 쉽게 레이싱을 경험할 수 있으며 마스터라이선스를 획득한 레이서만이 즐길 수 있는 전문가용 차량으로 스피드를 경험할 수도 있다. 차량내 GPS와 ICT 기술을 이용해 램타임은 물론, 속도기록정보와 주행영상을 레이서에게 전달한다.

브랜드스토어와 실내 스포츠게임존, 범퍼카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레이싱이 좀 겁이 나 도전하기 어렵다면 실내공간에서 볼링, 축구, 농구 등 15종의 실내스포츠게임을 즐겨도 좋다. 또한 VR레이싱을 경험 할 수 있는 체험형 게임존, 게임형 범퍼카 링고, 로봇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경험할 수 있는 테크 카페, 특별한 공간에서 셀럽처럼 촬영하는 셀프 포토스튜디오, 다양한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는 브랜드 굿즈스토어도 만날 수 있다. 특히 눈, 비, 강풍 부는 날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이곳을 찾아 모험과 스피드에 도전해보자.

현재 이랜드테마파크제주가 추진하는 애월국제문화복합단지가 인근에 조성 중이다. 이곳에는 한옥마을, 국제아트미술관, K팝공연장, 세계테마파크정원, 휴양문화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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