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알래스카 마을 구한 썰매견의 비밀

박정연 기자 2023. 4. 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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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미아(ZOONOMIA) 프로젝트 연구팀, 사이언스 논문 발표
19세기 초 알래스카를 가로질러 치료제를 운반해 전염병으로 마을을 구한 썰매개들의 후손. 위키미디어 제공

인간 뇌의 크기를 결정하는 유전자, 포유류 동물의 겨울잠을 가능케 하는 유전자, 전염병에서 마을을 구한 썰매견의 특성 등 그동안 진화와 관련된 생물학계 수수께끼가 대거 확인됐다. 전세계 50개 기관에서 15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공동 연구 프로젝트 '주노미아'를 통해서다. 확인되지 않았던 유전자의 다양한 기능과 포유류 동물이 가진 비밀 등이 새롭게 규명됐다. 인간 질병 치료 단서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대, 뉴욕대 등을 포함한 50개 기관의 과학자 약 150명으로 꾸려진 국제공동연구팀은 포유류 248종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프로젝트 ‘주노미아(ZOONOMIA)’의 연구 성과를 다룬 11개 논문을 2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일제히 발표했다.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의 저서 ‘주노미아’의 이름을 딴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포유류 동물의 유전자를 분석해 개별 종의 고유한 유전적 특성을 규명하는 게 최종 목표다. 

● 전염병으로부터 마을 구한 알래스카 썰매견

연구자들이 꼽은 가장 흥미로운 논문은 20세기 초 미국 알래스카에서 활약한 썰매견의 유전적 특성을 밝힌 연구로 캐서린 문 미국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교수 연구팀이 주도했다. 알래스카를 가로질러 디프테리아 치료제를 운반해 인근 마을을 전염병 발병으로 구한 썰매견 중 한 마리인 ‘발토’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발토를 비롯한 썰매견들의 이야기는 앞서 디즈니 영화로 제작돼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1925년 알래스카 지역의 작은 마을 ‘놈’에는 급성 감염성 질환인 ‘디프테리아’ 환자가 발생했다. 호흡기 주위 조직에 가짜막을 형성해 비인두염이나 폐쇄성 기관후두염을 일으키는 디프테리아는 심할 경우 목 부위가 황소만큼이나 심하게 붓는 소목 증상을 일으킨다. 심근염과 말초 신경병증과 같은 치명적인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염병 유행이 촉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치료제는 놈 마을에서 왕복 1048km 떨어진 다른 마을에 있었다. 영하 50도에 이르는 극한 환경에서 치료제 운반에 나선 것은 썰매견들이었다. 5일 만에 두 마을을 오간 썰매견들은 제때 치료제를 전달해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발토를 비롯한 썰매견들의 영웅담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연구팀은 미국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에 보존된 발토의 가죽에 남겨진 DNA를 추출해 이 개가 어떤 신체적 특성을 가졌는지 확인했다. DNA의 염기서열을 40번 이상 반복 해독해 부족한 정보를 채워나갔다. 분석 결과 발토는 썰매견으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시베리안 허스키나 알래스칸 맬러뮤트보다 근육 성장이 우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진대사와 산소 소비 속도도 현대의 썰매견보다 뛰어났다.

연구팀은 다만 발토의 뜀박질 속도가 현대 썰매견에 비해 빠르진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현대 썰매견들에 비해 달리는 속도와 관련한 근육이 덜 발달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연구를 이끈 문 교수는 “발토에게서 확인된 유전자는 개의 신체능력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특성을 보여줬다”며 “이번 연구에선 약 100년 전에 남겨진 동물의 피부에서 DNA를 분석하는 고도의 기술이 활용된 점이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 겨울잠 자는 동물의 비결...포유류 번성과정도 확인

아이린 캐플로우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 연구팀은 인간 머리둘레와 뇌 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규명했다. 인간 유전자의 특정한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기계학습(머신러닝)을 통해 인간만이 지닌 유전자 발현에 따른 뇌 부위 조직세포의 발달 양상을 살폈다.

분석 결과 소두증과 대두증에 관여하는 특정한 유전자가 확인됐다. 머리둘레가 기형적으로 형성되는 이 질병들은 뇌의 발달과도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다양한 뇌 관련 질환 치료의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윌리엄 머피 미국 텍사스A&M대 교수 연구팀은 기원전 6600만년 전 '백악기-팔레오기 생물대멸종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포유류 동물들이 다양한 종으로 갈라지고 번성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생대에서 신생대로 넘어가는 시기 종 발달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는 평가다.

커스틴 린드블라드 스웨덴 웁살라대 교수 연구팀은 동면을 취하는 포유류에게서만 발견되는 유전자 조절 요소를 발견했다. 곰과 같이 겨울잠을 자는 특정한 포유류에게서 오랫동안 잠에 들어도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조절 요소들은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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