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경제 발전을 막는다?'... 중국이 예외인 까닭 [책과 세상]
"푸 선생은 철도프로젝트에 싼 이자로 대출을 받게 해 주고 토지 사용권을 제공한 영향력 있는 관료에게 보답으로 여행용 가방에 회사 주식을 잔뜩 넣어서 뇌물로 주었다. 정책 당국자는 푸 선생과 유대가 깊었다. 가족 중 누군가는 강철 회사를 운영했는데 건설 붐이 일어날 때 더욱 큰돈을 벌었다."
'역시 부패한 나라 중국!'이라 외치며 무릎을 치고 싶은가. 사실 이런 거래는 19세기 말 미국 도금 시대(미국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탈피하는 과정에서 각종 부정부패가 속출했던 시대)에서 흔히 일어난 일이다. '푸 선생'은 바로 스탠퍼드대를 설립한 릴런드 스탠퍼드의 성을 중국식으로 음역한 것.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낮은 나라에 속하는 미국 역시,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부패의 역사를 겪은 셈.
부패는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여겨진다. 2012년 시진핑 주석이 "부패가 당의 생존에 실존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중국은 심각한 부패 문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역사적으로 가장 빠르고 지속적으로 경제 규모를 확대해 오늘날 국내총생산(GDP) 순위 2위에 오른 나라.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엔위엔 앙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교수는 신간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에서 중국의 부패와 성장 사이 관계에 천착한다. '부패는 항상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주장을 충분한 양적·질적 연구를 통해 반박한다. 그리고 주장한다. "모든 부패가 동일하게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종류의 부패는 심각한 위험과 왜곡을 가져올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가 분류한 부패의 4가지 범주는 다음과 같다. ①바늘도둑: 절도나 일선 관료의 갈취 ②소도둑: 정치 엘리트의 공공 재원 횡령 또는 유용 ③급행료: 사업의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관료에게 주는 뇌물 ④인허가료: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고위 관료에 배타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특권을 받기 위해 주는 뇌물.
'바늘도둑'과 '소도둑'은 경제적으로 가장 유해하다. 좀도둑질 같은 일상적 부패에 질린 투자자나 관광객, 해외 원조자들을 떠나게 만든다. 개발도상국에서 만연돼 있다. 하지만 '급행료'는 진통제다. 때때로 느린 의사결정이나 행정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부패 속에서 중국이 초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허가료' 부패가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미국, 일본 같은 고소득 국가에서 지배적인 유형이다. 인허가료를 '자본주의의 스테로이드'에 비유하는 저자는 "기업가 입장에서 인허가료는 세금이라기보다 투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중국 기업인이 공산당 고위 간부와 인맥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 뇌물을 쓰고 특권을 확보하여 거대 개발 사업을 일구는 것은 자원의 잘못된 배분과 불평등을 야기하지만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정치 리더의 출세와 평가가 그들이 일궈낸 경제적 성과와 연동되는, '이익 공유 원리'로 구성된 중국의 정치 시스템과 궤를 함께한다.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던 충칭에 대규모 건설 사업을 일으켜 5년 만에 도시의 위상을 180도 바꾸면서 공산당의 권력 지형을 뒤흔들었으나 2012년 뇌물 수수, 권력 남용, 횡령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보시라이를 보라.
'어떤 부패는 경제발전을 촉진한다'는 주장이 조금도 황당무계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저자가 과학적이고 풍성한 데이터를 토대로 논지를 전개하기 때문. 1988~2012년 '인민일보' 보도와 수사가 진행된 부패에 대한 공공 통계, 400건이 넘는 중국 관료와 기업가의 인터뷰 등이 주장을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부패를 긍정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부작용이 심각한 스테로이드처럼 인허가료 부패 역시 장기적으로는 자원 분배를 왜곡하고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2008년 중국은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4조 위안(당시 환율로 약 775조 원)을 쏟아부었고 각종 국가사업을 벌이며 부패가 싹텄다. 고속철도사업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비리 백화점 오명을 쓰자 2013년 철도부를 폐지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의 고속철도망은 전세계의 60%에 이르고(신화통신),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경제규모는 일본을 제치고 G2로 올라섰다. '부패의 역설'이다. 오늘날 중국의 기술, 혁신 부문은 정부인도기금 등에 의해 지원을 받는다. 총 규모는 9조5,000억 위안(2017년 기준).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서도 '부패의 역설'은 재현될까. 세계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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