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가총액 100조 향해 질주하는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
현대차는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102만1712대를 판매해 매출 37조7787억 원, 영업이익 3조5927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판매량은 13.2%, 매출은 24.7% 증가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6.3% 급등해 영업이익률 9.5%를 달성했다. '박리다매' 전략으로 판매 규모에 비해 실속이 적다는 그간의 지적을 불식하고 폭스바겐(7.3%), GM(6.2%), 도요타(5.9%·전망치) 영업이익률을 뛰어넘은 것이다. 기아 실적은 '형님' 현대차마저 뛰어넘었다. 기아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3조6907억 원, 2조874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29.1%, 78.9%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1년 만에 3.3%p 오른 12.1%를 기록했는데, 글로벌 완성체업계에선 메르세데츠벤츠(13.6%)에 필적하는 최고 수준이다. 자동차업계에선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꿈의 숫자'로 여긴다. 메르세데츠벤츠로 대표되는 전통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영업이익률이 높은 편이다. 영업이익률 제고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명실상부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부상했다는 지표로 볼 수 있다."일본 車업계 '갈라파고스화' 호재"
현대차·기아의 실적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선두주자인 테슬라와 비교했을 때 더 두드러진다. 테슬라는 4월 19일(현지 시간) 1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매출은 233억2900만 달러(약 31조30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4% 늘었지만, 순이익은 25억1300만 달러(약 3조3700억 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24% 줄었다. 올해 1월 테슬라는 시장 지배력을 높이겠다며 판매가를 최대 20% 인하하는 '치킨 게임'에 시동을 걸었다. 실적 발표 전날에도 판매가를 추가 인하하고 나섰다. 빠른 재고 소진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세액 공제 효과를 노린 것이다. 당장 실적만 놓고 보면 프리미엄 브랜드로 안착한 현대차와 기아가 박리다매로 선회한 테슬라를 압도한 모습이다.현대차·기아의 실적 질주에 주가도 꿈틀거리고 있다. 현대차 주가는 4월 26일 장중 한때 20만7500원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경신했고 전날보다 0.25% 오른 20만1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같은 날 기아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1.04% 내린 8만5700원에 장을 마쳤지만 장중 한때 8만970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차익실현 매물 때문에 전날보다 소폭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역대급 실적에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는 일찌감치 현대차 주가에 주목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대차 주식을 꾸준히 사들인 외국인투자자는 4월에만 2284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국내 종목 중 3번째로 많은 순매수 규모다. 기관투자자도 올해 들어 현대차 주식을 12만 주 이상 순매수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세에 코스피가 5거래일 연속(4월 26일 기준) 하락 마감한 가운데 나타난 주가 흐름이라 더 주목받고 있다.
"증권가 현대차 목표주가 상향"
이에 증권가에서는 현대차 목표주가를 잇달아 올려 잡고 있다. 삼성증권은 기존 27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하나증권은 23만5000원에서 27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고, 메리츠증권(28만→35만 원), 유안타증권(24만→33만 원) 등도 가세했다. 시장에서는 1분기 현대차·기아가 낸 호실적에 대해 "세계 경제불황 속에서도 고급 모델을 중심으로 높은 판매고를 유지하고,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5위권에 안착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돌발 변수가 없다면 2분기에도 호실적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데다, 이제까지 현대차·기아 주가가 실제 가치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점에서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향후 현대차 주가 추이에 대해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내년 주당순이익(EPS)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00조 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차 시가총액은 4월 27일 기준 약 43조원이다. 임 연구원은 4월 19일 낸 실적 리뷰 보고서에서 "2026년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판매 1위에 등극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일각에선 현대차와 기아가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는 2차전지 관련주에 이어 다음 주도주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일리 있다"면서 "국내 주요 수출주도주 가운데 현재 의미 있는 플러스를 내는 것은 자동차와 2차전지 정도인데, 2차전지는 이미 급등했다"고 말했다. "그간 현대차·기아는 '대형주'로만 간주됐다. 2010년대 주가가 계속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이제 재평가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공장 디지털화, 소프트웨어 인력 확충 필요"
이제 현대차·기아의 남은 과제는 전기차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국 IRA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IRA 세부지침에 따른 보조금 지급 대상을 미국 브랜드가 생산한 전기차, 하이브리드차에만 국한하기로 결정했다. IRA라는 규제 문턱은 미국 시장에서 피할 수 없는 변수가 된 가운데 현대차·기아 등 국내 브랜드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점은 위기지만, 일본과 유럽 경쟁사들도 같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 관계자는 "IRA 적용을 받지 않는 리스 등 상용차 사업 분야의 비중을 높이고, 미국 내 전기차 공장을 조기에 완공해 충격파를 줄이는 데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4월 25일 미국 조지아주 바토 카운티에 SK온과 함께 배터리셀 생산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합작 공장은 전기차 30만 대(35GWh)에 이르는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양산 시점은 2025년 하반기로 예상된다. 인근 조지아주 서배너 공장, 앨라배마주 공장과 시너지 효과로 미국 전기차 시장의 바뀐 생태계에 적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미 정부의 규제 노선을 면밀히 살피는 동시에 배터리업계와 손발이 맞아야 실현 가능한 대응 시나리오이기도 하다.다만 올해 하반기 자동차 업황이 둔화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현대차·기아의 실적 유지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공급자 중심이던 시장이 다시 수요자 중심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미 현대차·기아의 대기 수요가 지난해에 비해 줄어드는 모습도 감지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하반기부터 글로벌 내연차 판매 수익률이 낮아지는 등 자동차 시장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며 "2035년 이후 내연차 시장 규모가 전기차에 역전당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대비를 2030년까지는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자동차산업의 공급망과 생태계 전반의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차와 기아가 어닝 서프라이즈로 확보한 자금을 기술개발 투자와 인재 확보에 쏟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원장은 "기존 공장을 개조하는 것을 넘어 설계 단계부터 클라우드 도입 등을 염두에 둔 디지털화된 공장을 신설해야 한다"면서 "제품과 공정 차원의 혁신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인력을 강화하는 등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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