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19) 역대 최강 로켓 잡는 스페이스X '메카질라' 만들 韓 기업
올 1월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 해변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앞발을 닮은 거대 로봇팔이 움직였다. 50m 길이 폭 9m의 차세대 유인 우주선 ‘스타십’의 몸통을 잡아 훌쩍 들어 올렸다. 스타십이 높이 142m의 허공에 뜨자 팔이 회전했다. 길이 6m, 폭 9m의 거대 발사체 위에 올리기 위해서다.
이 로봇팔은 스페이스X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우주 발사대다. 지구로 귀환하는 로켓을 다시 잡아 부스터와 조립한 뒤 그대로 쏘아 올린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한달 이상 걸리는 로켓 정비와 재활용을 한 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다고 공언한다. 이 발사대는 영화 속 괴물 ‘고질라’의 이름을 따 ‘메카질라’라 불린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를 쏘는 발사대 개발에 참여한 업체인 건창산기의 이판균 전무는 한국판 메카질라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 전무는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발사대 관련 국내 제작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현대중공업과 건창산기 등 기업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기관, 민관이 뭉치면 국내에서도 메카질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창산기는 1995년 설립된 기계 제조업체다. 제철설비나 선박용 기계설비, 프레스 설비 등을 개발해 제조한다. 27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전무를 포함해 이 중 6명이 우주산업 담당이다. 우주산업에는 2016년 뛰어 들었다. 이 전무는 “당시 누리호 발사대 건설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며 “수주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확보하고 있던 유공압 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유공압 기술은 기름과 공기 압력을 활용해 실린더나 각종 버튼, 패들 집게 등 기계 제품을 조작하는 기술이다. 이 전무는 “유공압은 모든 기계를 구동하는 기반 기술”이라며 “건창산기는 중소기업으론 드물게 유공압 기술 뿐 아니라 기계나 전계장의 전문인력을 모두 보유한 회사”라고 말했다. 기계를 구동하는데 필요한 3개 기술 분야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보니 대기업 입장에선 함께 협력하기 좋은 강소기업이라는 설명이다.
건창산기가 개발한 발사대 지상기계설비 역시 대기업인 현대중공업과 함께 개발했다. 발사대 지상기계설비는 발사대 지상에 설치돼 발사체를 수직으로 기립시키고, 기립된 발사체를 고정시키는 설비 등을 통칭한다.
이 중 기립 시 발사대 하단에 만들어진 4개의 지상고정장치(VHD)는 누리호 발사 때마다 주목받는 장치다. VHD는 엔진에 불이 붙은 발사체를 붙잡고 있다가 엔진이 최대 추력에 도달했을 때 고정을 해제한다. 이 과정에서 4개의 지상고정장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므로 정교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이 전무는 “건창산기가 개발을 담당한 장치의 특징이 발사체를 포함한 대형 기계에 동작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라며 “기계구조물은 물론 유압, 공압 작동기와 전계장 제어 설비들이 통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누리호의 탯줄이라 일컫어지는 엄빌리칼 케이블을 회수하는 기계 장치 역시 건창산기가 개발했다. 엄빌리칼은 발사체에 추진제와 전기를 공급하는 설비다. 고체연료 발사체는 로켓 안에 미리 추진제를 넣어놓을 수 있지만 누리호와 같은 액체연료 발사체는 발사 직전에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조립동에서 빈 상태로 올라온 누리호는 엄빌리컬 타워에 달린 케이블로 액체연료를 넣어 준다. 발사체가 발사된 후 케이블을 재 빠르게 회수해야 한다. 회수에 실패하면 달랑거리는 케이블에 발사체가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이 전무는 “1차와 2차 발사 때 개발한 모든 기계장치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뿌듯함과 안도감을 느꼈다”면서도 “올 5월 24일로 예정된 누리호 3차 발사는 긴장감을 주고 있다. 조그마한 센서가 고장만 나도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고 말했다.
건창산기는 우주사업에 지속 참여한다. 지난 3월 시험발사체 발사에 성공한 이노스페이스의 발사대 개발도 건창산기가 참여했다. 2024년 설립을 준비했으나 일정이 1~2년 가량 늦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민간 우주발사장 등 국내 모든 우주발사장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런 경험을 기반 삼아 발사대 해외 수출도 가능할 것이란 기대다.
이 전무는 “동남아시아 시장 등을 겨냥해 수출 시장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며 “발사대 지상기계설비를 개발해본 곳은 국내에서 건창산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이 날 누리호 3차 발사 준비가 한창인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했다. 건창산기 직원들은 6월 초까지 계속 상주할 예정이다. 이 전무는 “3차 발사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지상기계설비들을 점검하는 등 뒤처리를 해야 한다”며 “누리호 개발 사업은 그 어떤 사업보다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더 잘 되어 한국 국민들이 좀 더 편리하게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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