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에 빠져 몰입 못하는 당신… 빅테크가 ‘설계’한 겁니다[북리뷰]

박동미 기자 2023. 4. 2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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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김하현 옮김│어크로스
뇌, 새로운 것 접하면 재설정
온라인 정보 넘쳐 소화 못해
인터넷·스마트폰 등장 이후
주의 분산되고 집중력 상실
수익에만 치중한 빅테크 기업
디지털 세상 몰두하게 만들어
게티이미지뱅크

책의 첫 장(章)을 읽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36페이지, 두께로 치면 3㎜ 정도로 얇다. 난해하거나 지루했냐고 하면, 절대 아니다. 책은 제목부터 솔깃했고, 집중력 저하를 비만율 증가와 같은 ‘사회적 유행병’으로 규정한 것도 흥미로웠다. 관심은 충만했고, 단숨에 빠져들었다. 저자가 ‘디지털 디톡스’ 여행을 떠나는 부분부터는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문제는 ‘집중’이 어려웠다는 데에 있다. 책의 주장대로 말하면, 온 세상이 ‘집중’을 방해했다. 눈앞 모니터는 습관적으로 새로 고침을 눌러 최신 뉴스를 확인하게 했고, 이메일 함은 한 번 열면 자꾸 다른 세계를 접속하게 했다. 여론조사 등 업무와 관련 없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으며, 어쩌다 휴대폰을 쥐게 되면 의식은 묘하게도 SNS로 흘러가 돌아올 줄 몰랐다. 그러다 너무 오래 앉아있었다는 스마트 시계의 경고음까지 울리자, 집중력은 ‘분열’ 상태에 이르렀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일상을 산다.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터넷 토끼굴을 헤매며 ‘이게 다 알고리즘 때문’이라고 자조와 체념 섞인 우스갯소리를 하고, ‘저글링’ 하듯 업무를 전환하며 자신이 ‘멀티 태스킹’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자신을 탓한다. ‘난 왜 이렇게 자제력이 없지’ 하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명상도 해보지만 큰 효과는 없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자책과 원망의 무한 루프에 빠져있던 저자가 작정하고 쓴 책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기자인 저자는 지난 몇 년간 3만 마일을 오가며 250여 명의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그들은 주로 ‘집중력’과 그 분열의 요인들을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도둑맞고’ 있다. 책은 이를 파고든다. 누가, 왜 우리의 집중력을 훔치는가.

저자는 그 ‘도둑’을 해부하기 전, 지금 우리의 삶에 ‘너무 많은 것’과 ‘너무 부족한 것’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부터 분석한다. 예컨대, 인터넷의 등장 이후 가공할 속도로 증가·확산하는 정보량을 생각해 보자. 이를 소화하기 위해 인간은 과거엔 기계에나 쓰던 용어 ‘멀티 태스킹’의 주체가 됐다. 책은 인간의 뇌 크기와 능력이 4만 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면서, 멀티 태스킹이란 미신과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 업무를 쉬지 않고 ‘전환’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때마다 뇌는 ‘재설정’되고, 여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고 경고한다. 책은 이를 ‘전환 비용’이라 부르는데, 바로 ‘집중력 저하’다.

‘너무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수면’과 긴 텍스트에 대한 몰입이다. 책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인간의 수면 시간은 20% 감소했다. 잠이 모자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책은 수면과 집중력의 관계 실험에서, 무언가에 반응하는 속도가 가장 빠른 사람은, 잠을 가장 많이 잔 사람으로 나타났다면서, 사람이 18시간 내내 깨어 있을 경우, 혈중알코올농도 0.05%의 상태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보여준다. 수면은 뇌 속 독성 단백질을 없애는 정화 과정이다. ‘죽으면 계속 잔다’며 잠을 아끼는 현대인들이 많은데, 그러다 누구보다 빨리 ‘영원의 잠’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

또, 저자는 인터넷을 끊고 한적한 마을에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어봤지만, 과거와 달랐다. 그는 뉴스를 보듯 ‘다그치며’ 소설을 읽는 자신을 발견한다. 짧고 빠른 텍스트가 지배한 세상에 적응한 뇌가 읽기 체험의 방식조차 바꿔놓은 것. 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건, 긴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다시 우리는 ‘원망의 대상’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잠을 빼앗고,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주범, 바로 디지털 기기와 그 속의 세상이다.

따라서 책은 구글과 애플 등 거대 빅테크 기업들을 비판하는 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너무 많은 것’과 ‘너무 부족한 것’을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부족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이들의 전략이고, 사업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원할수록, 모니터에 더 많은 창을 띄워 놓을수록, 휴대폰을 더 많이 들여다볼수록 돈을 번다. 그들이 설계한 세상에 ‘참여’할수록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 책은 이러한 ‘집중력 위기의 구조적 특징’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 인정했듯, 만족스러운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것은, ‘경제 성장’이라는 전 인류가 몰두하고 있는 목표를 거스르는 일이고,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집단과의 싸움이며, SNS상의 표면적이고 기분 좋은 ‘신호’들에 적응해버린 뇌를 고통스럽게 시험하는 일이라서다.

저자는 현대인의 집단적인 집중력 저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사회적이고 시스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타당하고 궁극적인 결론이지만, 국영방송인 BBC처럼 소셜미디어를 공동으로 운영하자거나, 기후 위기 등 전 인류가 ‘집중’해야 할 문제가 산적했기 때문에 우리가 빨리 ‘집중력’을 되살려야 한다는 식의 제안과 설득은 무리수로 보인다. 차라리,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쉽고 빠른 ‘몰입’의 체험인 ‘소설 읽기’를 권하는 게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들이 개인의 잘못처럼 다루는 ‘집중력’을 덜 개인적이고, 더 큰 담론으로 끌고 나간다는 점에 이 책의 미덕과 힘이 있다. 다양한 연구와 통계뿐만 아니라 저자 개인의 경험까지 생생한 책은, 저자가 강조한 대로 긴 텍스트 읽기의 체험과 동시에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책 한 권을 다 읽어 낼 ‘집중력’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말이다. 464쪽, 1만8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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